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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173 “우리 동네도 군대가 들어와서 중대본부가 있었어요. 우리 어렸을 때 거기를 가면 딱딱 한 빵을 줬어요. 엄청 큰 빵이요. 지금도 기억나는데 거기에 가면 그 빵을 줬어요. 그 사람 들이 노래도 알려줬는데 4분의 4박자 식으로 노래를 해요. 빵 먹으면서 집으로 돌아가 는 길에 그 노래를 부르면 우리 할머니가 그 노래 부르지 말라고 말렸어요.” 어린 형제의 눈에도 군인들은 굉장히 어려 보였다고 한다. 군대 앞에 음용 식수를 얻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빨래를 하거나 놀다보면 머리를 빡빡 깎은 군인 들이 놀아줬다고 한다. 하루는 동네 형을 따라 마산포 뒷동산에 올라갔다. “바닷가가 보이는 산 중턱에 텐트를 쳤어요. 도착했는데 날이 어두워지더라고. 거기에 텐트를 치니까 동네 분이 오셔서 여기 있으면 안 된대. 왜냐면 6.25 전쟁 때 사람이 많이 죽은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 이인용 텐트에서 대 여섯 명이 잤는데 바깥쪽에 안 자 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송산중학교를 지켜내다 두 형제는 송산중학교 출신으로 아직도 송산중학교를 생생히 기억했다. 특히 동생인 문기승 선생님은 송산중학교에서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현재는 교장선생님으로 재임하고 계신다. 송산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토박이는 송산중학교를 나왔다고 해도 무방 할 정도로 송산중학교는 마을 사람들의 배움터이자 지역의 중심이었다. 실제로도 송산 중학교는 지역 유지들이 재산을 기부해 만든 학교이다. 학교를 세우고 보수한 것도 주민 이었으며, 추후 학교 재단으로 염전을 운영해 운영비를 충당했다. “송산중학교는 사립이에요. 우리가 학교 갈 때만 해도 흙담집이었어요. 그런데 사람들 이 돈이 없으면 안 되겠다 해서 염전을 만들어서 소금을 갖다 팔자고 했어요. 송산면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리어카를 끌고 둑을 만들었어요. 당시에는 소금 값이 비싸니까 그 돈을 재단에 썼죠. 정확히 제가 3학년 때 둑이 터졌어요. 그래서 전교생이 다 삽을 들고 나와서 그걸 막았어요.” 염전을 운영해서 수익 사업을 하다 보니 다른 학교보다 재정적으로 형편이 나았다. 당시 선생님들에게 소금도 한 포대씩 줬다고 한다. 문기승 선생님이 교사로 부임 했을 때 가을 에 천일염을 한 포대씩 주고,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바꿀 수 있는 쿠폰을 주기도 했다. 송산 중학교의 탄탄한 재단은 마을 주민들이 쌓아올린 것이기에 지금도 주민들은 송산중학교 에 애정이 많다. 송산중학교가 사립이지만 법인의 이사 분들이 임기가 끝나면 상속하지 않고, 다른 분으로 바꿔서 한다고 한다. “송산중학교의 자랑이 배구에요. 9인조 배구라고 화성시에서 우승도 하고 그랬어요. 한번은 송산중학교에서 돈이 없어서 배구 팀이 해체될 것 같다는 거예요. 염전이 없어 지니까. 그래서 우리 학교 후배인 가수 조용필한테 연락을 했어요. 모교에서 노래 좀 불러보자고요. 서울에서 퇴근하면 송산에 가서 포스터 붙이고, 다시 출근하는 걸 3일 동안 반복했어요. 송산중학교 체육관에서 했는데 사람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말도 못해요. 그 덕에 송산중학교 배구팀이 살았죠.” 힘닿는 데까지 할 우리들 두 형제는 송산에 대해 많은 추억을 가지고 계셨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미래도 현명하게 맞이할 수 있다고 했다. 앞으로 국난이 찾아온다면 독립운동 가 집안의 후손으로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행동할 것이라고 말씀하 셨다. “송산면은 특별한 지역이에요. 주민들의 단결력이 굉장히 좋고, 힘이 강한 동네였어요. 우리 어렸을 때만해도 외부인이 동네에 들어와서 함부로 못했어요. 그리고 사강이 일개 조그만 촌이었지만 개신교랑 서구문물이 빨리 들어온 동네라서 사람들이 훨씬 일찍 깨었 죠 . 문상익 할아버지가 했던 행동을 들었고, 그 후에 결과가 어떠했는지도 알아요. 하지만 나라에 어려움이 닥친다면 저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나서야지요.” - 문기남 선생님 “1991년부터 송산중학교에서 근무를 했어요. 고향으로 돌아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30년이 됐네요. 송산 지역 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나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번 송산 독립운동가 마을 조성 사업으로 인해서 지역 주민의 자랑이자 긍지 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자라나는 학생들이 애국심을 갖고, 활력을 되찾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송산중학교 교장으로서 학생들이 송산 지역 독립운동 과 관련해서 교육이나 활동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고, 앞으 로도 그럴 예정입니다.” - 문기승 선생님 Part 04 기억하는 사람들 기 억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