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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231 독립운동가 왕광연 사료명 왕광연 신문조서(王光演 警察調書) 원본 출처 한민족독립운동사료집 22권 3.1 운동 ⅩⅡ> 예심신 문조서(국한문) 공판 시말서(제2회) > 재판장은 피고 왕광연에게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 21 三一運動 ⅩⅡ> 豫審訊 問調書(國漢文) 公判始末書(第二回) > 王光演) 문: 대정 8년 3월 26일(음력 2월 25일) 홍면옥(洪冕玉) 등의 선동에 의하여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 송산면사무소(水原郡 松山面 沙江里松山面) 부근에서 대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는데 어떤가. 답: 그렇다. 묻는 그대로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문: 피고는 이전부터 조선의 독립을 바라고 있었는가. 답: 내심으로는 독립을 바라고 있었다. 독립운동가 전도선 사료명 전도선 신문조서(全道善 警察調書) 원본 출처 한민족독립운동사료집 22권 3.1 운동 ⅩⅡ> 검사 신문조서(국한문) > 전도선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 21 三一運動 ⅩⅡ> 檢事訊 問調書(國漢文) > 全道善) 문: 너는 조선독립 만세를 고창한 일이 있는가. 답: 대정 8년 3월 28일 오후 2시 경부터 대정 8년 3월 28일 오후 3시까지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水原郡 松山面 沙江里)에서 수백명의 조선인과 함께 조선 독립만세 를 고창하였다. 문: 그 때 순사의 제지를 듣지 않고 투석하여 폭행하였으며,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 口廣三)을 많은 조선인이 돌과 몽둥이로 살해한 것을 아는가. 답: 알고 있다. 문: 그 전말을 상술하라. 답: 동일 오후 3시 경, 사강리 송산면사무소(沙江里 松山面事務所) 뒷산에서 수백명 이 집합,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했던 바, 갑자기 한발의 총성이 들렸다. 이에 놀라 서 군중은 조금 물러섰다. 그 때 누군가가 조선인이 총을 맞았다고 하면서 모여들 었다. 나는 군중의 뒷편에 있어서 잘 몰랐는데 많은 사람이 그 일본순사를 타살하 라고 하면서 사강리주재소(沙江里駐在所)에서 자전거를 타고 남양(南陽)방면으로 도망가는 그 순사를 추적하여 동리 동쪽 노상에서 포위하여 마구 돌을 던져 동 순 사가 넘어지자 약 100명 안팎의 사람들이 돌과 막대기로 머리, 얼굴 기타를 난타 하여 오후 3시반 경 살해하였다는 것이다. Epilogue 부록 독 립운동가 신문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