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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207 중요하다는 마음에서였다. 나라를 떠나지 않더라도 서울에서 큰 병원을 차리고 부를 축 적할 수 있었겠지만, 선생님은 욕심을 두지 않고 가족들이 있는 송산으로 향했다. 홍의원 을 세우고 왕진을 다니던 어느 날 노인 한 분이 말을 건넸다고 한다. “이 집이 자네 할아버지, 홍헌 선생이 나무를 내주어서 만들어낸 집일세.” 홍완유 선생님은 당시, 그 말을 전해 들으니 참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말씀하셨다. 홍헌 선생님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아 사람들을 도왔듯, 홍완유 선생님도 자신이 가 진 의학이라는 기술을 나누는 데 기꺼이 나섰다. 송산에서 남양, 서신, 대부도, 서신 등 쉬이 병원을 찾아오지 못하는 벽지의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 치료해주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덕분인지 저 멀리 명의가 있다고 소문이 파다하여 외지에서도 찾아오는 환자들이 더 러 있었다고 전하셨다. 문득 홍완유 선생님이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여 여쭈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변해주셨다. “우리 고모부가 우리나라 결핵 치료의 선구자인 이찬세 박사야. 그분이 찾아오시면 우리 집안이 난리가 났었지. 어릴 땐 마냥 귀한 손님이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아픈 사람들 고 쳐놓고, 살리고 하는 것이 되게 가슴이 뛰더라고. 자연스럽게 ‘나도 의사가 되어야겠다.’ 싶어서 공부한 거야.” 대를 이어 자신이 가진 것을 남을 위해 베푸는 심성은 홍완유 선생님 대에 끝나지 않는다. 아내 김현순 선생님 역시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을봉사대 등의 단체에서 봉사활동에 힘쓰 셨고, 선생님의 아들 또한 아버지의 옆에서 의사 생활을 하며 지역민들을 돕고 있다. 이어서 손자 또한 의사가 되어 환자들을 보살피고 있다고 전하셨다. 홍헌 선생님의 후손들, 이분들이 대를 이어 타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은 부모가 스승으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주 의 미덕을 몸소 실천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고모부 이찬세 박사와 함께, 경희루 앞에서동료들과 함께, 군의관 시절 “교육을 따로 할 것이 있나. 말을 하고 안 하고 간에 우리 조상님들이랑 부모가 정도를 걷고, 나쁜 짓을 안 하고 사니까 후손들도 나쁜 짓 할 생각을 않지.” 선을 베풀어야 복을 받지, 악한 짓을 하면 돌아와 홍완유 선생님은 의사로서 남을 도울 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 주변인들을 돕는 것 또한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형편이 어려워 빚을 내준 사람에게, 돈을 돌려받지 않고 오히려 1년간 생활비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빚 때문에 급히 집을 팔아야하는 사람에게선 웃돈을 얹어주고 매입해주기도 부지기수였다. 또 시장에 사람은 많은데 차를 둘 곳이 없으니, 땅을 사서 주차장으로 만들어 무료로 쓰도록 하였다. 그렇게 덕행을 쌓다보니, 마을에서 선생님을 몰라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곧은 성품 탓에, 이전 삼청교육대가 운영되던 시절 고초를 겪었던 일이 있 었다고도 전하셨다. 지역 경찰들이 풍기를 단속하며 잡혀 들어온 중·고등학생을 오산 으로 보내는가 하면, 길가에서 버젓이 시민들을 나무라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홍의원 바로 옆에 있는 가게 주인의 딸이 어머니 앞에서 머리가 길다고, 머리카락을 잘리는 사건 까지 일어났다. 이런 소문을 들은 홍완유 선생님은 경찰을 불러다가 차분히 말했다고 한다. “당신네들, 여기 주민들 마음을 안위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강압적으로 하면 좋지 않겠습니다. 조용히 근무하시거나 다른 곳으로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차라리 내게 맡기면 내가 마을 사람들 보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었는지, 이튿날 집을 수리하고 있던 홍완유 선생님을 몇 사람이 찾아와 구속해 오산경찰서로 데려가 버렸다고 말씀하셨다. 영문도 모른 채로 구치소로 들어가니, 면식이 있었던 마을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서 ‘홍 선생님’이 이런 데 올 사람이 아닌데, 여긴 어쩐 일로 왔느냐고 인사를 건넸단다. 그렇게 하루를 지내고 삼청교육대로 보내기 전 심사위원회가 열렸다. 경찰, 군수, 교육자 등의 심사위원들이 모인 가운데, 김현순 선생님은 그중 ‘이사철’이라는 사람을 잊지 못한다고 연신 말씀하셨다. 다들 홍완유 선 생님을 심문하면서 몰아붙일 때, 당시 검사 신분의 이사철 선생님은 완강하게 반대 의사 를 표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와서는 이러는 거야. ‘내가 들은 것이 있는데, 이 사람이 인격자고, 후덕하게 굴었지 마을에서 인심 잃고 살지 않았다고 했다. 나로서도 저 사람은 처음 보는 일이지 만 틀림없이 나쁜 짓할 사람은 아닐 것이다. 확실히 재고해라.’ 그 덕분에 우리 신랑이 풀려났지. 그래서 그 이사철이라는 이름을 잊어버리질 못해.” 불행 중 다행으로, 홍완유 선생님의 인망이 여기저기 퍼져있던 덕에 외지에서 찾아온 Part 04 기억하는 사람들 기 억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