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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부재영민하여 불구문달하였으며 스스로 바른 예절을 행하여 효순성경하였다. 선조 임진왜란에 공의 백형 수전은 의병을 일으켜 죽산 봉성에서 왜적과 일대격전을 감행하여 용전하였으나 병고시진하여 마침내 장렬하게 순국하니 후에 형조참의에 증직되고 명정되어 충신 정려문이 세워져 오늘에 전한다. 그런데 정유재란으로 왜구가 다시 침범하자 안성사인 홍계남이 창의하여 의병을 영솔하고 진천 현탄령에 내둔함이 공은 국운이 위급함을 좌시할 수 없어 향리에서 의병을 일으켜 홍계남의 의병과 합세하여 북상하는 왜적을 막아 싸워 물리쳐 기호지방의 안정을 이룩하였다. 이로 인하여 공은 선전관에 제수되고 군자감정에 증직되었다. 공은 또한 효성이 극진하여 조석지공과 정성지절로 효도를 다하여 형제우애하고 친족이 화목하니 이 어찌 충효양전한 희대의 순풍미거가 아니리요. 공은 배 한양 조씨 사이에 3남을 두시니 장자 재는 현감이요. 차남 찬은 통덕랑이고 3남 빈은 증 판결사이며 현손 봉서는 훈련판관이니 영조 무신란에 공을 세워 특사 녹권하고 왕이 친히 치하하며 손을 어루만지니 황공하여 종신토록 그 손을 금포로 싸매고 감격하여 마지 않았다 한다. 문중에 자손이 번창하고 효절이 속출하니 가히 충효지문이라 원근 종족이 봉선 추모의 뜻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