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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應吉 之墓(김응길 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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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길은 충남 예산 출신으로 1906년 3월 봉기한 홍주의진(洪州義陣)의 선봉장 이남규(李南珪)를 도와 의병 활동을 하다가 희생되었다. 홍주의진은 1908년 3월 15일 창의하였으나 곧 실패하고 해산하였다. 이에 잔여 의병을 수습한 민종식(閔宗植)이 1906년 5월 11일 부여군 홍산(鴻山)에서 재봉기하여 5월 19일 홍주성을 점령하고, 5월 28일 의병진의 편제를 조직적으로 구성하였다. 이때 이남규는 홍주의진의 선봉장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5월 31일 일본군의 홍주성 공격이 시작되어 홍주의진은 6·70명이 전사하고 83명이 포로가 되었다. 민종식을 비롯한 의병장들은 홍주성을 탈출하여 충남 청양·온양·공주 등지를 전전하다가 9월 그믐에 충남 예산의 이남규 집에서 회합하였다. 이들은 10월 5일 예산으로 진격하고자 하였으나 일진회원의 밀고로 이남규를 비롯한 의병장들이 체포되었다. 이남규와 그의 아들 이충구(李忠求)는 일본군의 만행으로 함께 희생되었다. 김응길은 이남규 부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주먹으로 일본군에게 반항하다가 칼에 맞아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