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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만세 이승주 선생은 1922년 6월 19일(음력) 대흥 이수룡 공과 김성룡 여사의 3남으로 평북 신의주시 서마전동 464번지에서 출생. 43년 3월 18일 평북 박천군 청용면 하동 385번지 파평 윤헌수공의 2여 윤정실 여사와 결혼. 44년 9월 17일 일본 제국주의의 징병제에 의해 일본군 30전차대에 강제 입대 소련 블라디보스독(중국 북지구두)에서 전차교육을 받음. 그해 12월 중국 장사성 작전의 행군중 김창갑 정병갑 이종식 동지와 합심하여 한 목숨 받쳐 조국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중국악주에서 일본군을 탈출. 45년 4월 고생 끝에 중국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서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일명 토교대)에 입대 임시정부 및 총사령부의 경비와 요원의 경호 우리 교민에 대한 생명 재산의 보호와 민생 업무 장차 우리 국군의 기간요원을 목표로 교육과 훈련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친선을 위한 정훈 활동 등의 임무를 수행 중 그해 8월 일본이 패망. 46년 5월 한국 광복군 복원령에 의해 이범석 장군 등 임정요원을 모시고 한구 남경 상해 부산을 경유하여 그해 6월 인천항에 상륙하여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해단식을 가졌다. 한국 전력에 입사하여 서울에서 사회생활 중 51년 6월 한국전쟁이 발생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육군에 지원하여 전쟁에 참여 종전으로 대구에서 피난 중인 가족과 상봉하여 대구에서 정착함. 60년 10월 17일 대구지방법원의 허가에 의해 본적을 대구시 중구 종로2가 89번지로 취적. 63년 8월 13일 대통령 표창 29호. 76년 6월 24일 대구시장 표창. 349호. 91년 12월 16일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 1949호를 수여 받음. 91년 4월 1일 조국과 이웃 그리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사신 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대구직할시 신암동 선열묘지에 영면하심. 1994년 6월 일 경주 이원수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