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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선 지사는 1924년 3월 11일 경산군 남산면 하대동에서 아버지 박진식 선생과 어머니 강복수 여사 사이에 차남으로 생장하면서 유시부터 백부 박정식과 외숙부 강종호로부터 한학을 배우면서 이들에게서 조국이 일제 식민지배로 고통을 받고 있음을 깨우쳐 주셨기에 일직부터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어야 하는데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고민하는 청소년 시절을 보냇던 것임. 지사께서 서울 중동학교 재학 시인 18세 때인 1941년 3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내 공작원이던 박동만과 접선 서울시 내 각 학원에 침투 박동만 공작원으로부터 지령받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한국 광복군의 활동상을 비밀리에 유포 선전하고 일본 패망을 예고하면서 조국 독립을 위하여 청년학도들이 대동단결하여 징병 반대 창씨 반대 한국어 사용 폐지 반대 등을 행동화하여야 한다고 지하 선전 유포하는 활동을 하였고 1943년 중동학교를 졸업 후 일본 횡수가(요코스카) 군수공장에 위장 취업 군수품 출입 함정 등 정보를 박동만 공작원에게 보고하기도 하고 귀국 후 동지 박기수 이영환 김영길 등과 독립단을 조직하여 비밀리에 영천 경찰서 대구경찰서 대구신사 등을 방화 계획했으나 미수에 그치는 등 활동 중 1944년 8월 23일 영천군 영천읍 작산동에서 대구지구 헌병대 장신전대위가 지휘하는 헌병대에 체포 1945년 5월 18일 징역 7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 광복으로 출옥하였는바 정부는 1990년 지사의 독립운동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고 1999년 2월 28일 서거하여 여기 선열공원 묘지에 안장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