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page


229page

기전 일본군을 탈출하여 일본군에서 지독한 정보를 활용하여 탈출때 만났던 중국군 소대병력의 지원을 받아 중국공로(中國公路)를 통행 중이던 일본군 수송차량을 습격 병사 2명을 포로로 잡고 양곡 80가마 및 의료품 다량 등을 노획한 전과를 올렸다. 장지사가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제1분대원으로서 중국군 제9전구 사령부에 파견되어 학전 중 용감하고 침착하여 많은 중국 군인의 모범이 되었고, 그는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강직한 성품으로 제9전구 사령장관이던 설악(薛岳) 장관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을만큼 헌신적인 군인이었다. 해방 후 국내도 들어와 살면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고 민족 정기 선양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귀향하여 광복군의 전우였던 권준호와 자주 만나 해방 전 광복군이 계획했던 국내 진입작전에서 우리 함께 죽었던들 38선이 그어졌을까? 분단 오십여년이 흘러갓을까? 를 함께 추억하는 한을 씹다가 1999년 1월 12일 영면 하였다. 20000년 5월 3일 이곳에 장지사의 거룩한 뜻을 기리는 표석을 세우다. 한국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제9전구 전우 권준호 짓고 광복회 대구.경북 연합지구 광복동지회장 고령 신성구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