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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성(섣甲r&") 동을 만나 궐기를 촉구했는데, 그 인백은 장덕 수가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과 중복된다. 한편, 상해에서 파견된 선우혁의 권유흘 받아들인 장로교 실력 자 이숭훈은 동지틀과 협의하여 단독으로 궐기할 계획올 세우고 있다가 최린 동 천도교 측의 연락올 받고 상경한 것이 2월 11일 이었다. 그는 송진우 · 신익희(미l 짧熙) 둥과 만나 천도교측과 운동올 통합하는데 찬성하고 이튼날 선천 · 정주로 폴아가서 기독교 동 지들을 규합했다. 그리고 2월 17일 다시 상경하여 송진우를 만났 으나 태도가 분땅치 않아 의혹을품고 있던 차중앙기독교청년회 의 간사 박희도(朴熙파)를 만났다. 이승훈은 2원 20일 박희도의 집에서 오화영(吳핸파) . 정춘수(郞-tfì.:jê)둥과혐의했고,다시 함 태영의 집에시 세브란스병원 사무원인 이갑성 둥과 회합했으나 의 견의 일치룰 보지 봇했다. 2원 21일‘ 최남선이 이숭훈올 찾아왔고함께 최원의 집올 찾아 가휘의한끝에 민족행동올통일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이숭훈은 천도쿄측으로부터 기독교측의 거사준비콜 위한 자금으로 5친 엔 을 받고, 이날 딴 세브란스병원 안의 이갑성 숙소에서 10여명의 기독교 간부들과 의논한 결과 2‘l일 천도교측에 통고함으로써 마 침내 기독교와 천도교의 동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어 불교계 도 가담하여 독립선안서에 서명할 민족대표의 인선작업이 시작 되었다. 51H 양핑:\.1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