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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윤기영(尹續榮) 1871 - 1941 본적.강상면 송학리 158번지 주소:(미상) 1995년 대통령표창 윤기영( )I"J幾榮, 18기-1941)의 본관은 파평, 장상면 입향조 윤 정(J'"짧)의 후손으로 수땅의 아들로 강상면 송학리 lS8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9년 3월 31일 강하면과 4월 1일 양서띤. t월 3일 옥천면의 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그 는 광우황제의 승하를 당하여 밍국의 통한을 가누지 옷하고 있던 중 서울에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좌시활 수 없다며 만세운동을 제획하였다. 그는 최대현 · 이보원 · 신우균 둥과 뭇을 모아 거사일인 3월 31일 오후 1 1시에 강하면사무소 앞에서 ,'1월 1일 에는 양서면사 무소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계속해서 4월 3일에도 옥천면 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는데, 이때에는 옥천면 주민뿐만 아나 라 인근의 장상면 · 강하면 · 양서면 퉁지애셔 합류하여 시위 군 중의 규모가 <1천여 병에 달했다. 이들은 옥천연 딴세시위에 이어 양근융으호 향하였으나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란압으로 해산되고 말았다. 이떼 윤기영은 현장 에서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인해 1919년 10월 5일 경성 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도를 받았다. 20S 양i생:'>.1 운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