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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는 1919년(32세) 3월 24일 조선독립운동의 주동이 되어 양근리에서 군중 수백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 활동을 하였다. 당시 이진규 · 곽영준이 일경에 붙잡혀 양평 헌병 분견소 에 잡혀가자,두분을석방하라고외치며군중수백 명과같이 면 사우소, 군청 우편소의 문서를 찢어버리고 관청관료들을 구타하 면서 창살문을부셔버리는동격렬한시위를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경에 붙잡히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올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일본 침략자의 치하에서 소아(/J、됐)의 삶을 던지고 대아(太我)에 살았으니 이릎다운 일이다. 정부에서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자료 및 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 독림운동사자료집 5권 창조정보 193p> (3) 김극선(金極훌) 이명 : 金鏡德 1878 1 17 - 1945 1 1 본적 :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지평리 506 주소: 경기도 g 팽군 g 팽읍 St근리 209 1990년 애족장 3.1 운동 관련 1919. 만세운동에 서울서 참가 3년 복역 1922 출옥(예심종결서) 김극선 선생은 본래 함경남도 정평 출생으로 양평에서 살았다. 호 영곡(싫유). 별명 경덕(鏡德). 1919년 3월 12일 김백원(~ 겁째) . 운일평(文 -平) . 차상진(ïj파H땀) . 문성호(文파鎬) . 조형균(趙 제2부 양평의 3.l만세운동 16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