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page

(2) 애원서 사건에 참여한 양평의 문성호 · 김극선 의사 가.문성호의사 애원서 사건올 주도한 12인의 의사 중 유림게의 한사람인 운 성호와 기독교게의 한사람인 김극선 둥 두 의사가 양평출신 또는 양평에서 활동한 인불이었다. 즉, 1919년 3월 5,6일부티 애원서 와 인얀을 갖기 시작하여 일관 총독에게 전달하는 일을 맡아 당 당하게 총독부를 찾아가 전달하고 독협의 당위성 등을 당당히 설 파한 문성호는 바로 양평출신의 당시 4H세 유생이었다. 본적과 출생지는 물론 주소도 양평군 용문면 중원리 410번지였다. ]871 년 2월 13일 생으로 본관은 냥평이다. 1905년에 대한제국을 대표 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일본의 특냉전권대사 하야시곤스케 간에 체결된 을사보호조약이리는 01명으로 우리의 외교권을 완전히 박탈당할 때 대한제국 중추원 의관(談官)이라는 요직에 있었다. 외교권을 빼앗겼기 떼운에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만방으로부 티 독립국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올사오적인 이완용 · 박제순 · 이지용 · 이근택 · 권중현의 찬동 하에 을사보 호보약이 체결되아 국가의 운r썽이 풍전둥화 같올 때 나라 안에서 는조정의 대신과요직을차지한관리들은 이리저리 눈치나보며 실속을 챙기고 있었다. 1907년 7월 6일 송병준이 어전회의에서 고종황제의 양위를 주장하고 엄금을 연금시켜 버 리자 임금은 할 수 없이 보름 만에 양위조칙을 발표하고 양위식을 거행하였다. llH 양굉:U운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