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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독립운동에 참가 정신(挺身)하다가 일본 특고경찰에 체포되어 1929년 신호형무소(고베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조국 광복후에는 일본에서 조국 평화통일운동에 활약하면서 한학자로서 경주 한국한시연소원 이사를 역임하고 전업인 청전사를 설립 경영하면서 고국의 고향을 돕기위하여 새마을 성금으로 일금 63만원(백미 400두)을 1973년에 희사함을 비롯하여 전화사업비와 어린이 복지시설과 새마을 회관 부지를 의사하여 구성리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슬하에 1남 6녀를 애정과 교양으로 고등교육을 훌륭히 가르쳐 사회에 진취시키며 공은 확고한 국가관과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많은 활인적덕하며 알아오다가 1982년 11월 4일 향년 78세로 타계하시었다. 우리 주민 일동은 뜻을 모아 공의 생전공덕을 흠모하며 길이 타의 귀감을 삼고자 이 송덕비를 세운다. 서기 2000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