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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독립운동사개관 91 같은 해 박예진(2-51)은 보통학교가 대중에게 확산된 1930년대를 중심으로, 보통교육을 둘 러 싼 조선인의 교육행위를 분석하였다. 나아가 당시 조선인에게 있어 보통학교 및 서당에서의 교 육이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지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같은 해 전홍식(2-52)은 일제 강점기의 충주지역 도시변화를 3단계로 나눠 고찰하였다. 시 구 개정(1913)과 행정구역 개편(1914) 등의 식민지 개발 사업을 거치면서 일본인들이 충주 중심 부 를 차지하고 조선인들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즉 중심부의 일본인사회와 외곽의 조선인 사 회가 분리되는 이중 도시공간이 형성되었다. 성벽철거와 시구개정이 이루어지면서 일본인들 은 새로이 개설된 도로변에 상설점포를 열고 영업을 하게 됐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다. 같은 해 이용철(2-53)은 친일파 민영은을 관직과 계몽운동 시각으로 분석하였다. 그는 직 접 사립학교를 운영하기도 했으며 여러 학교에 기부금을 내기도 했다. 또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 는 기호흥학회를 필두로 계몽단체에도 관여했다. 이 같은 활동들은 지방관으로서의 책무인 동 시 에 국망의 위기에 대한 관리 및 지식인들의 대응책이기도 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로, 다른 전 문가들의 견해가 궁금하다. 같은 해 김희찬(2-54)은 1908년 충청북도 관찰부(도청) 이전에 관한 재검토를 시도, 일제 가 사전에 충분히 준비를 한 상태에서 청주로 이전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청주연혁지』 등 기 론 사료와는 크게 배치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2017년 남금자(2-55)는 대한제국기의 무반 한규설 가계의 충북지역 토지 소유 실태를 고 찰 하였으나 유통망 등 종합적인 분석이 안 된 점은 다소의 아쉬움을 주고 있다. 2018년 박종 관 (2-56)은 충북 ‘문화운동’의 시발점을 일제 강점기까지 끌어올렸으나 사료부족 탓인지 소략 한 편으로, 향후 연구 성과를 기대해야 할 것 같다. 3)향후과제 이상 충북 독립운동사에 관한 글과 간접적으로 관련된 연구 성과를 시간을 흐름 순으로 살 펴 보았다. 아래에서는 연구 성과의 미진한 부분을 소략하나마 사례를 들어 언급하고자 한다. 첫번째, 동학과 의병의 연결고리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 박걸순이 고착한 『이 곽 포원록』를 통해 음성지역에 ‘동학의병’이 존재했음이 처음으로 확인됐으나, 매우 중요한 연결 고 리임에도 불구하고 추가 연구 성과가 뒤따르지 않고 있다. 서두에 언급하였듯이 독립운 동사 연구 글 1백35편 의병은 35편으 로 38%를 차지하고 있 다. 제천을 중심으로 한 도내 의병의 참여세력, 전개과정, 배경 등 구체적인 실체에 대하여 충분 히 연구되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의병관련 문집, 저서 등에 대한 번역 및 발간 등이 이같은 연구 성 과를 뒷받침하였다. 214) 그러나 전체 사회구조 속에서 의병운동의 발생과 지역에서 의병운동의 의미를 찾는 것에서는 부족함이 있다. 당시 지역의 가족 환경, 경제상태, 동족마을 등에 대한 연 214 심철기, 2011, 「의병사 연구의 현황과 제천의병」, 『지역문화연구』10, 세명대학교 지역문화연구소, 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