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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독립운동 사적지 기초조사 보고서 86 구분 논문 / 단행본 연구별 분류 2-43 김주용, 2013, 「일제강점기 충북인의 만주이주와 생활」, 『중원문화연구』 20,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사회 2-44 김의환, 2013, 「대한제국기 槐山郡 陵 村里 농민층의 경제적 지위 : 안동 김씨 제학공파 동족마을 사례」, 『한국학논총』 39, 국민대학교 한국학연 구소 사회 2-45 남금자, 2013, 「대한제국기 민영휘의 충주 일대 토지 소유와 경영 사례」 『한국근현대사연구』 65, 한국근현대사학회 경제 2-46 이용철, 2015, 「일제강점기 閔泳殷 의 '유지정치'와 식민권력의 청주지역 침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50,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인물 2-47 성주현, 2015, 「1920년대 유림계의 ‘내지시찰’」, 『한국민족운동사연구』 83, 한국민족운동사학회 정치 2-48 김영미, 2015, 「마을역사책을 쓴 어느 농민의 생애와 생각」, 『한국논총 학』 44, 국민대학교 출판부 인물 2-49 청주시, 2015, 「청주시 도시계획 변천사」 사회 2-50 홍순두, 2016, 「충북 북부지역 시장 변화와 상품거래에 관한 연구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충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경제 2-51 박예진, 2016, 「1930년대 충북지역 초등교육 연구 :지역민의 교육관 및 교육행위를 중심으로」, 한국교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교육 2-52 전홍식, 2016, 「식민통치전략과 도시공간의 변화 :-일제시기 충주를 중심 으로-」, 한국교통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정치 2-53 이용철, 2016, 「대한제국기 閔泳殷 의 관직활동과 계몽운동」, 『한국독립 운동사연구』 54,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인물 2-54 김희찬, 2016, 「1908년 충청북도 관찰부(도청) 이전에 관한 재검토 -이전 관련 전후 상황과 영향 관계를 중심으로-」, 『충북학』 18, 충북학연구소 행정 2-55 남금자, 2017, 「대한제국기 한규설의 武班家系 와 충북지역 토지 소유」, 『한국근현대사연구』 80, 한국근현대사학회 사회 2-56 박종관, 2018, 「충북지역 문화운동의 사회학적 고찰」, 충북대학교 석사 학위논문 문화 대정12년은 1923년이다. 청주에 거주하던 일본인 오쿠마 쇼지( 大熊春峰 )는 향토지 『청주연 혁지』(淸州沿革誌 ·2-1)를 저술하였다. 52쪽 분량의 책은 당시 청주의 관공서, 금융기관, 학교 및 명승고적 등을 기술했으나 청주지역 통치 자료로 이용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고 있다. 1993년(2-2) 최치영은 학위논문에서 충북지역은 지주조합이 1914년 3개에서 1920년 10개 (3천명)명으로 급증하였다고 밝혔다. 일제는 이런 지주회를 통해 자국의 식량원료의 공급지로 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곡 상품화라는 당면 목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일제는 지주를 의 도적으로 포섭하여 지주제 회의 운영에 전반적으로 관여했다는 것의 그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