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6page

856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06년 송병순이 영동 학산면에 강당을 건립하여 민족교육을 하였던 곳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범화리 978 일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범화리 건물 멸실 - 송병순( 宋秉珣 , 1839~1912)의 호는 심석( 心石 )으로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순절한 송병선( 宋 秉璿 )의 아우이다. 그는 일제가 1905년 11월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늑약을 체결하자 이에 반대하여 투쟁을 전개하였다. 1906년에는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범화리에 강 당을 건립하여 제자들에게 민족독립사상을 교육하였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여 나라가 망하자 통분하여 여러 번 자결을 기도했으나 실패하고 두문분출하며 망국의 슬픔을 시 로 달래었다. 이후 1912년 일본 헌병이 소위 은사금을 가져 왔으나 거절했으며, 같은 해 일제가 회유책으로 경학원 강사로 천거하자 역시 이를 거절하고 유서를 남기고 독약을 마시고 순국하 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충절을 기리어 1977년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영동역 앞에는 송병순을 기리는 동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대전 문충사에 송병선·송병순 형제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 당이 있다. 송병순 강당 터의 위치는 2008년 현지조사에서 여영옥(범화리 거주, 당시 78세)의 증언에 의 해 학산면 범화리 978번지 일대로 확인하였는데, 현재 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영동역 입 구에는 ‘순국의사 심석재 송선생병순의 상’이 설치되었는데,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그해 11월 〈토오적문〉을 지어 전국 유림에게 배포하고 국권회복에 궐기할 것을 호소하였다고 하였다고 적고 있다. 송병순 강당 터 계몽운동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