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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23년 8월 30일 영동소작인상조회 회원들이 영동노농동맹회를 창립하였던 청년회관이 있던 곳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계산리 694-17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면 계산리 건물 멸실 - 영동소작인상조회에서는 1923년 8월 30일 오후 2시에 영동청년회관에서 임시총회를 개최하 였다. 우선 소작인 이외에 무산자도 일치단결하여 착취 계급인 유산자에 대항하여야 한다는 이 유에서 회의 명칭을 「영동노농동맹회」로 개칭하였다. 임시총회에서는 회칙을 개정하여 종래 소 작인에 한하여 회원 자격이 있던 것을 일반 무산자도 누구든지 회원의 자격이 있게 하고, 회장 제를 위원제로 개정하였다. 이를 통해 영동소작인상조회가 과거의 소작운동에서 노농운동으로 확대 발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영동노농동맹회는 그 해 9월 국제 청년의 날을 맞이하여 선 전 문 배포와 시위를 계획하고, 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영동노농동맹회는 1924년 3월 정기총회를 통해 소작권 이동에는 절대로 공동경작을 할 일, 규정을 벗어나 함부로 징수한 소작료에 대해서는 절대로 수회할 일, 강제로 징세한 제세 및 공 과에 대하여는 필히 반환케 할 일, 악덕 지주와 악덕 마름[ 舍音 ]에 대하여는 성토 연설회 등 일반 사회에 공포할 일 등 4개항을 결의하였다. 영동노농동맹회의 결의는 소작인들이 지주 에 대한 요구사항을 회원들의 단결로 관철시키고자 한 것이며, 이것은 창립된 지 1년도 안되어 4~5,000의 회원을 가질 정도로 급속히 발전한 힘을 바탕으로 해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 와 같이 성황을 보이던 영동노농동맹회는 1925년이 되면서 그 세를 잃고 유명무실한 단체가 되고 말았다. 영동소작인상조회는 『동아일보』 1923년 9월 6일 기사에 영동청년회관 터에서 창립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2008년 조사에서 영동문화원 김윤호(계산리 거주)의 증언으로 당시 영동청년회 관 터는 현재 영동제일교회 자리임을 확인하였다. 당시 영동제일교회는 영동시장 근처에 있었 는데 지금은 2008년 새 건물로 이전하였고, 이곳에는 시장주차장이 조성되었다. 영동청년회관 터 - 노동동맹회 창립대회지 국내항일운동 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