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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19년 4월 3일 영동군 양강면민 200여 명이 만세시위를 벌인 곳 충청북도 영동군 양강면 괴목리 412-4 일대 충청북도 영동군 양강면 괴목리 건물 멸실 - 1919년 3월 25일 양강면 묵정리( 墨井里)에서 조선독립신문이 발견되어 괴목경찰관주재소 일 경들이 경계활동을 강화한 일이 있었다. 이후 4월 3일 오후 2시경 박중옥( 朴中玉)·김용문(金用 文)·노성구(盧成九 )는 수많은 군중과 함께 괴목리의 경찰주재소로 이동하여 독립만세를 외쳤 다. 시위대는 자신들을 제지하려는 일제 경찰을 구타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당시 만세 운동에 참여한 군중의 수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는데 『소요사건에 관한 도장관 보고철』 등에는 200명,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의 독립운동에 관한 건(제37보)」에는 2,000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검거된 인원은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의 조선소요사건일람표에 관한 건에 22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이때 체포된 박중옥은 재판 결과 징역 3년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으며,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려 애족장을 서훈하였다. 괴목리 경찰관주재소는 20 08년 현지조사 에서 마 을 주민 황봉 수(괴목리 거주, 당시 77세)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현재 이곳은 민가가 들어서 있다. 한편 괴목리 입구인 괴목교 차로에는 마을유래비가 있는데 이곳에 당시 3·1만세운동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양강경찰주재소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3·1운동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