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page

충북독립운동사개관 75 온 데서 보듯이 정운경은 의병장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 했던 인물이었다는 것이 저 자 의 견해이다. 권영배는 같은 해 한말 의장( 義將 ) 원용팔(元容八)의 현실인식과 거병논리를 고찰하였다. 원 용팔은 강원도 원주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제천의병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논문은 원용팔 의병의 역사적 의의를 그가 전기의병에 이어 중기의병을 일으킴으로써 한말 의병사에 서 전기의병과 중기의병과의 관계 설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그의 원주의병은 전기 유인석의 호좌의진의 재기적 성격을 띠었으며, 무엇보다도 그의 의병이 한말 중기의병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라고 그 의의를 부여하였다. 오영섭(1-43)은 고종 임금의 이종사촌인 심상훈을 고찰하였다. 그는 고종의 안위나 자신의 신 상에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수시로 제천으로 내려와 머물곤 하였다. 이 때문에 중앙을 활동무 대로 삼고 있는 심상훈이 자연스럽게 제천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 이다. 당시 제천인들 가운데 시국을 개탄하는 우국지사나 항일운동에 종사하려는 민족운동가 나 벼슬을 구하는 구임객( 求任客)들이 서울로 올라갈 때면 항일대신 심상훈의 문하에 의탁하 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서울의 변화상과 시국대세와 세계정세에 대한 정보들이 함께 제천으로 들어왔을 것으로 저자는 추론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전국에서 가장 강력한 위정척사계 유 림세력의 활동지인 제천사회에도 이른바 동도서기론적 개화의 물결이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것 이 그의 견해이다. 박연호(1-44)는 제천인물 유제원의 아내로, 「안사람의 의병가」·「병정의 노래」 등 의병가를 많 이 지은 윤희순을 고찰하였다. 논문은 그녀의 의병활동이 강한 자발성과 진정성을 토대로 헌신 적으로 수행될 수 있었던 힘은 근대적 자아로서의 남녀평등에 토대한 ‘근대적’ 여성인식이 아니 라고 주장하였다. 대신 시부모와 남편·아들을 뒷바라지하는 삼종지도( 三從之道)를 여성의 가장 중요한 직분으로 생각한 ‘중세적’ 여성 인식에서 나온 것이 그의 결론이다. 매우 보수적인 분석 으로 다른 전공자들의 견해가 궁금하다. 이상설은 충북 근대사에서 갈수록 주목을 받고 있는 연구 주제이다. 같은 해 박걸순(1-54)은 이상설의 인품, 학자적인 면, 독립운동 성과 등을 살펴본 후 그의 생애를 관통한 것은 실천적 지 성이었다고 규정하였다. 2006년 구완회(1-46)는 이기진의 삶과 사상을 논증하고자 하였다. 그가 법복을 고수하고 의 병에 뛰어들었던 것은 단발령과 흑의령 등으로 인하여 중화의 전통이 영영 끊어질 것이라는 위 기의식에서였다. 이런 점에서 그의 화이론은 많은 동지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럼에도 그 가 유인석의 종사로 활약한 것은 그가 지니고 있었던 충주 하곡이라는 재지적 기반이 고려됐 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박민영(1-47)은 이소응의 생애와 항일투 쟁을 재구성, 그 의의를 살피고 자 하였다. 이소응 은 화서학파의 학문을 일생 동안 실천에 옮겼던 학자인 동시에 항일투사였다. 그는 화서학파의 학 문 특색인 실천을 전제로 한 춘추대의적 의리와 명분에 입각한 존화양이론에 철저히 경도되어 있었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필생 노력을 경주했다. 국내외를 무대로 한 그의 기나긴 족적과 일체의 활동은 항일독립과 민족자존의 구현을 위한 실천적 노력이었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