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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07년 12월 의병이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던 곳 충청북도 보은군 산외면 장갑리 366 일대 충청북도 보은군 산외면 장갑리 거리 변형 - 노병대( 盧 炳大 )·김운로(金雲老 )·송창헌(宋昌憲) 등은 속리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는 격문을 보고 찾아온 200여 명의 의병들을 규합하여 충주지역에서 의진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1907년 7월 해산된 군인들도 의병에 가세하여 500여 명에 달하는 병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 의병부대 는 충주를 주 무대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전과를 올렸는데, 이후 보은 읍내로 진격하면서 일본 인 2명을 처단하고, 미원으로 행군해서 공격해 오는 일본군 5명을 사살하였다. 이후 1907년 10월 500여 명의 의병들이 보은군 산외면 장갑리 쪽으로 이동하였는데, 이때 추격하는 일본군 20명과 만나 읍내에서 북쪽으로 30리 떨어진 산외면 장갑리에서 전투를 벌 인 후 상주로 철수하였다. 그리고 1908년 1월에는 장갑리 마을의 남악에 머물러 있던 의병들 은 일본군과 마주쳐서 전투를 벌였으나 의병은 30명의 사상자를 내는 피해를 입었다. 산외면 의병전투가 일어난 장갑리를 『한글지명총람』에서 보면 산외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남악, 벌말, 적말, 안말, 새말을 병합하였다고 하며, 남악은 안말 서쪽에 있다고 하 였다. 한편 일제강점기 지형도에서 보면 현재 장갑교차로 일대 마을을 남악으로 표기하였는데, 곳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확한 마을을 확정할 수는 없지만 대체 로 현재 장갑삼거리 일대의 마을과 주변의 산지에서 의병전투가 일어났던 것으로 판단된다. 현 재 마을 주변의 산지는 상당부분 개간되었지만 하천이나 도로, 마을의 위치 등은 이전과 큰 차 이가 없다. 장갑삼거리를 기준으로 북동쪽에 장갑1리, 남쪽에 장갑2리가 위치하고, 삼거리 서쪽 남악2길을 중심으로 큰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산외면 의병전투지 의병운동 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