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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4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07년 12월 16일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많은 병력을 잃어 이강년 부대가 북상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 된 전투지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 율곡리 산81 일대 충청북도 단양군 가야면 율곡리 복상골 산야 원형보존 - 1907년 12월 16일에 이강년 부대는 궁골에서 북진하여 복상골(단양 어성천면 율곡리, 창밖 안 서북쪽 2km)에 주둔하였다. 이강년은 마을의 집강과 종사를 시켜 정탐을 하였는데, 오후 늦 게 갑자기 일본수비대가 기습하여 사방에서 포위하고 사격을 퍼붓자 포군들이 황급히 흩어져 달아났다. 이강년은 별포장 이문경(李 聞慶)의 사격으로 적의 접근을 막으면서 임현 서쪽의 산록 으로 피하였다. 이곳은 소나무가 울창하여 일본군이 추격하지는 못하였으나 군사들은 다 흩어 지고 이강년의 주변에는 겨우 네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패전의 내용을 확 인할 수 있었는데, 중군장이 피신한 것은 알았으나 그 밖의 참모 원철상(元哲常 ), 신숙(申肅)과 신명희(申明熙) 숙질, 소모장 이중봉(李 重鳳 ), 포군 이달(李達 ) 등 10인이 모두 잡히고 소모선 봉 권용일(權用佾)을 제외하고 모두 전사하였다. 복상골 전투는 일본군의 집요한 겨울 공세의 결과였다. 이강년은 더 이상 이곳에서 버틸 수 없음을 알고 일본군의 포위망을 벗어나 북상하 게 된다. 『한글지명총람』에 따르면 복상골은 창의촌 서쪽에 있는 마을로 복숭아나무가 많았다고 기록 하고 있다. 현행 1:5,000지형도를 통해서도 복상골의 위치를 알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 지형도 에서 보면 이곳이 ‘중방북( 中方北)’ 일대이고, 주변으로 작은 마을이 조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복상골 의병전투지 의병운동 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