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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896년 1월 제천의병이 관군과 전투한 곳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118-1 일대 충청북도 단양군 장회리 산야 원형보존 -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과 단발령은 조선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전국적으로 의 병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제천군수가 단발을 재촉하던 1896년(고종 33) 1월 중순 안승우 ( 安承禹 )·이춘영(李春永 ) 등 지평의 포군들로 이루어진 의병 부대가 원주의 안창리에서 의병을 일으켜 제천으로 달려왔고, 이에 장담의 선비들이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그 해 이필희 를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한편 단양지역에는 동학농민군 봉기 이후 일본군과 관병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1896년 1월 22일 관군 200명이 단양읍으로 쳐들어왔다. 날이 밝자 장회리 동임( 洞任 )에게서 급보를 접한 의병진은 급히 참모 회의를 열고 작전계획을 검토한 결과, 일부 병력을 나누어서 이필희는 군사 를 지휘하여 읍의 서북쪽인 장림(대강면 장림리)으로 가서 주둔하고, 이범직(李範稷 )은 읍의 남 쪽 7리 지점인 유다리를 방어하게 하였다. 서상렬은 이춘영 등의 포군을 거느리고 장회협에 매 복하였다. 천혜의 요새이자 장회협에서의 첫 전투는 정오 무렵 관군이 골짜기로 들어온 이후 시작되었다. 격전 끝에 의병 측은 최소의 승리를 거두었고 적이 버리고 간 군수물자도 다수 확 보할 수 있었다. 의병들은 승세를 타고 북쪽으로 추격하였으나, 날이 춥고 저물었기 때문에 추 격을 그만두었다. 이 전투는 제천의병이 최초로 거둔 승리인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장회협의 위치는 2008년 조사에서 단양군향토사연구위원인 지성룡의 증언으로 현장을 확정 하였다. 장회협은 장회나루 교차로에서 남쪽으로 설마로를 따라 진입하며 설마교가 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 해발 250~300m 정도의 능선 사이로 이어지는 좁은 협곡에 해당한다. 일제강점 기 지형도에서도 장회협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확인되어 오래 전부터 통행로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다리는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봉산, 구미와 함께 외중방리에 편입되었다 고 하는데, 외중방리는 장회나루 교차로에서 36번 국도를 타고 영주 · 단양방면으로 약 600m 정도 가면 위치한다. 마을입구에는 표지석이 있는데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유다리를 비롯한 마 단성면 장회리 의병전투지 의병운동 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