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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묘역 657 J e c h e o n 제 천 조사의견 참고문헌 제천의병의 묘소를 모아 놓은 곳으로서 의병의 항일애국정신을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 는 공간이다. 최근 망우 독립유공자 묘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사례가 있으므로 순국선열묘 역도 문화재로 지정하여 향후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84, 『독립운동사자료집』1 의병항쟁사자료집 디지털제천문화대전(http://jecheon.grandculture.net/) 순국선열 묘역 원경 으며, 2월 유인석의 종사관으로서 제천, 충주, 단양, 풍기, 평창 등지로 행군하면서 군수( 軍需)를 증가시켰다. 3월에는 유인석이 판서 심상훈의 설득으로 조정에 의병의 입장을 전하려고 상경 하 였다가 도리어 체포될 뻔하자, 유인석을 호위하여 서간도 통화현으로 망명하였다. 저서로는 초 기 의병운동 연구에 도움이 되는 『종의록』( 從義錄 ), 『창의견문록』(倡義見聞錄 ) 등이 있다. 김용이, 김재관, 추성손, 우재봉, 우규하, 박원용, 오원용의 칠의사는 스스로 제천 의병진에 참 여하여 충주성을 함락시키고, 수안보 전투에서는 정운경의 휘하에서 용감히 싸워 전공을 세웠 다. 그러나 박달재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잡혀 1896년 2월 26일 제천 고장숲에서 순국하였다. 일본군은 처형한 칠의사의 시신을 불태웠으나 동료 의병들이 이를 거두어 남산 갈마골에 합장 하였는데, 사람들은 이를 칠의사총( 七義士塚)이라고 불렀다. 순국선역묘역은 태백선 장락역 건널목 지나 800m 정도 들어가면 위치한다. 순국선열 11위의 묘역은 서북서향으로 안치되었고, 칠의사는 1기의 묘소에 합장하여 모두 5기의 묘소로 구성되 어 있다. 각 묘소는 둘레석을 두른 원형의 봉분이고, 묘소 옆에 비석을 세웠다. 이 묘역은 제천 시청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