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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을미의병 이후 의병론자들의 본거지였으며, 이강년의 전투사인 「운강창의일록」을 편찬한 곳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 231 충청북도 제천군 동면 건물 원형보존 충청북도 기념물 제87호 박약재( 博約齋)는 1907년 의병장 이강년이 일제와 교전할 때 대성전과 재실이 불에 타자 그 곳의 위패를 이곳으로 옮겨 모시기도 하였던 곳으로 제천의 유학과 의병의 중요한 유적지 가운 데 하나이다. 이곳은 을미의병 이후 의병론자들의 본거지였는데, 을미의병 이후 유인석이 이곳 을 중심으로 융의계(隆 義契 )를 조직하기도 하였고, 이강년도 이곳에서 의병봉기를 준비하였다. 또한 1907년 강순조·박정수·이화중 등이 호서의병장 운강 이강년의 전투사인 『운강창의일록 ( 雲岡倡義日錄)』을 이곳에서 편찬하였고, 1915년 3월 14일에 유인석이 74세의 나이로 사거하 자 제천의 동지와 후학들이 빈소를 설치하고 조문을 한 곳이기도 하다. 박약재는 진주 강씨 문중에서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조선 중기에 세운 강당으로 당초 ‘학문 을 널리 익히고 예절을 배운다’는 뜻의 논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정묘호란 때 척화를 상 소한 상곡(尙谷 ) 강유(姜瑜 , 1597-1668)가 수학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진주 강씨 종중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 건물구조는 목조기와의 팔작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중앙 은 대청마루이고 왼쪽에 방 2개, 오른쪽에 방 1개가 있으며 툇마루를 두었다. 현판은 유인석(柳 隣錫 )의 친필이다. 박약재 - 의병론자 본거지 의병운동 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