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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07년 음력 7월 천남전투 승리 후 이강년이 부하 장수들과 정세를 논하던 곳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 241 충청북도 제천군 현좌면 모산 건물 원형보존 제천 향토문화자료 제12호 정미의병 창의 당시 제천을 중심으로 활약한 의병대장 이강년(李 康秊 )이 제천 천남 전투에서 승리한 후 1907년 음력 7월에 영호정에서 부하 장수들과 정세를 논하였으며, 도창의대장( 都倡 義大將 )으로 추대되었으나 사양하였다. 이후 김상태(金 尙台 )가 4군(郡) 방면으로부터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다시 권하니 이강년은 부득이 허락하고 여러 장병들의 군례를 받았다. 그리고 김상태로 중군을 삼고, 백남규( 白南奎)로 우선봉(右先鋒), 하한서(河漢瑞)로 좌선봉, 윤기영으로 전군(前軍 ), 이중봉(李重鳳 )으로 우군, 이용로(李容魯 )로 좌군, 이세영(李 世榮)으로 감군(監軍 ) 을 삼았다. 이강년(1858~19 0 8)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제천 의 유인석과 의를 맺고, 유인석 의병부대의 유격장으로서 문경·조령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또 한 1907년 일본의 침략이 더욱 노골화되자 단양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으나, 청풍 의 까치성(작성) 전투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서울로 압송된 후 평리원( 平理院)에 이송되어 교수형 을 선고받고 1908년 9월 19일(음) 51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이강년이 장수들과 정세를 논했던 영호정( 映湖亭)은 제천시 모산동 214번지 의림지 남쪽 제 방에 위치하며, 향토문화자료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순조 7년(1807) 이집경(李 集慶 )에 의해 건 립되었고, 6·25 때 파괴된 것을 그의 후손인 이범우가 1954년에 중건하였다. 영호정은 화강암 주춧돌 위에 건축된 목조단층의 정자로 건평이 13㎡(4평) 팔작지붕에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 건물은 북쪽은 제방 위, 남쪽은 제방 경사지에 걸쳐 있다. 따라서 건물 구조는 높이 가 다른 8각의 고주초석 위에 원형 기둥을 세웠고, 동쪽 우측 칸에 ‘영호정( 暎湖亭)’이라 쓴 현 판을 걸었으며, 누마루로 오르는 계단을 설치하였다. 영호정 - 제천 의병장 집결지 의병운동 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