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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896년 5월 25일 관군과 의병의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의병장 안승우와 종사 홍사구가 순국한 곳 충청북도 제천시 화산동 191-84 일대 충청북도 제천군 현우면 남산 산야 변형 현충시설(제천의병 남산전투지) 1896년 5월 23일 장기렴의 관군이 제천을 향하여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날 밤 어둠을 틈타 장기렴의 관군이 대덕산을 타고 깊숙이 침투하여 북창에 주둔 중인 의병부 대를 공격하자 의병들은 대적하지 못하고 높은다리(高橋)까지 물러서서 적을 막았다. 결국 관 군은 북창, 교동, 죽문 밖의 높은 다리 일대를 장악하고 무력시위를 하였다. 한편 높은다리에서 의병이 관군에 패배하자 유인석은 후군장 신지수에게 강녕에서 돌아오는 적을 봉쇄하도록 하 고, 총력을 제천방어와 청풍 쪽의 전선에 집중시켰다. 총독 조달승, 별모중군 이원하에게는 높 은다리를 지키게 하고 전군, 참군의 각 군사는 여러 성을 나누어 교대로 숙직하면서 지키게 하 였다. 또한 단양의 장림에 주둔하고 있던 전투부대에게는 관군의 배후를 치라고 지시하였다. 그 러나 관군은 신속히 진격하여 높은다리의 방어선을 우회하고 산길을 따라 5월 25일에는 제천 고장숲까지 깊숙이 들어왔다. 고장숲에서 의병과 관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갑작스런 비바람으로 의병의 주요 무기인 화승총이 성능을 잃게 되자 당황한 의병은 흩어져 버 렸다. 남산성에서 포군들에게 화약을 재어주고 돌을 던지면서 전투를 독려하던 안승우( 安承禹 )는 대세가 그릇된 것을 알았다. 그는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종사 홍사구( 洪思九 )에게 떠날 것을 명령하였다. 깃발을 부여잡고 서있던 안승우는 관군의 좋은 표적이 되었고, 이내 총에 맞아 쓰 러졌다. 안승우는 회유하는 관군을 매섭게 꾸짖고 순절의 길을 선택했다. 스승의 곁을 떠나지 않고 적을 치면서 꾸짖던 홍사구 역시 관군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다. 그때 안승우의 나이는 32 세, 홍사구의 나이는 19세였다. 이 전투로 제천의병은 근거지인 제천을 빼앗기고 온갖 어려움 을 겪으면서 확보해 둔 군량도 모두 관군의 수중에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남산 의병전투는 『하사안공을미창의사실』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남산(해발 168m)은 남산 의병전투지 의병운동 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