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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895년에 의암 유인석이 8도의 유림을 모아 창의의 비밀결사를 한 장소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475 충청북도 제천군 근좌면 공전리 건물 원형보존 충청북도 기념물 제37호, 현충시설(자양영당;제천의병전시관·의병탑) 자양영당은 유중교가 후진을 양성할 목적으로 1889년(고종 26)에 처음 세운 사당으로 처음 에는 창주정사(滄州精舍)라 하였다가, 1906년 이소응( 李昭應)의 주도하에 화서학파에서 존중 하는 선현들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위패와 영정을 봉안하면서 창건되었다. 이항로-김평묵으 로 이어지는 화서학파의 거두였던 유 중교는 1889년 가 을, 서울 에서 비교적 가깝고 번잡한 춘천을 피해 한적한 제천 봉양의 장담으로 이주하였다. 같은 해 11월부터 매월 상순·중순·하순에 장담서사에서 강회(講會 )를 개최하고 이를 기록하였다. 이 강회는 1893년 3 월 유중교가 별세하기 직전인 동년 1월까지 계속되었다. 그 후 유중교의 사후에 다시 문도들이 모여서 서상렬을 고과( 考課, 스승이 부재시 그 역할을 대리하는 역)로 하여 강회를 지속하였다. 1895년 3월 의암 유인석을 새로운 스승으로 추대함으로써 윤5월부터 10월까지는 유인석이 강 회를 이끌었다. 유인석은 1895년 전국에 단발령이 시행되자, “문명을 포기하고 야만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하고, 8도 유림 600여 명을 모아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발의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창의 하였다. 1907년 유림들은 주자( 朱子 ), 송시열(宋詩 烈), 이항로(李恒老), 유중교(柳重敎)의 영정 을 모시는 자양영당을 세웠으며, 후에 유인석(柳麟錫 ), 이직신(李直愼)의 영정이 추가로 배향되 어 오늘날에 이른다. 자양영당은 1977년에 있었던 제천 자양영당 전면 보수 공사 전에는 지붕이 돌기와로 되어 있 었다고 한다. 1984년 12월 3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37호로 지정되었고, 1995년 이후 제천의 병 사적지 성역화과정을 거치며 보수하였고, 바로 인접하여 제천의병전시관과 제천의병기념탑 이 조성되었다. 또한 주변 지역 정비를 통해 주차장을 비롯한 넓은 공간을 마련하여 의병 성지 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자양영당 앞으로는 제천천이 흐르고 있으며, 그 옆으로 충북선 철 로가 지나고 있다. 자양영당 - 제천의병 창의지 의병운동 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