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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독립운동 사적지 기초조사 보고서 56 학교나 사회단체에 배포하면 좋은 교재가 될 것이다. 충청남도처럼 매년 1개 시군을 선정하 여 순회 학술회의를 진행하여 지역민에게 자긍심을 높여주고 일체감을 갖게 하며, 후에 이를 보 완 하여 책자로 발간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나아가 ‘충북독립운동기념관’의 건립도 추진했으면 좋겠다. 현재 상당수의 지자체가 근현대 사 기념관을 건립했거나 건립 중에 있다. 국가현충시설로 추진하면 국고 지원도 가능하다. 즉흥 적 이고 산발적인 선양사업이나, 특정 개인의 기념사업보다는 충북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를 연 구·전시·교육하는 센터로서 ‘충북독립운동기념관’의 건립을 기대해 본다. (2) 연구대상(주제)의 문제 ① 일제의 침략상과 사회경제적 상황을 밝히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의 실상과 그로 인한 한국 사회경제의 변화는 20세기 전반기의 역사일 뿐 아니라 현재와도 연계되는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근현대사의 배경으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 닌다. 그러나 이 분야는 연구가 취약한 대표적 분야의 하나이다. 의병이 어디에서 일본군과 전 투를 벌여 몇 명을 죽이는 전과를 거두었다는 식의 전투일지적 연구는 이제는 지양되어야 한 다. 당시의 이해를 심화하기 위해서는 일제의 침략상과 사회경제적 상황이 구체적으로 밝혀 져 야 한다. 예컨대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한 농촌사회의 파괴와 농민의 분화 현상 등은 그 좋은 주제일 것이다. ② 동학과 독립운동과의 맥락이 실증적으로 규명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충 북의 지역사 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 李 郭抱寃錄 』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동학에 참여한 농민들이 민족운동의 잠재적 세력으로 잠복해 있는 상황과, 이들이 이후 민족운동에 참여하는 구체적 양상이 더욱 많은 실증적 사례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 이다. 그래야만 동학이 지니고 있는 민족운동사에서의 위치가 올바르게 정립되고 이후 민족운 동과의 연계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③ 청주진위대의 해산이 충북 의병 활동에 끼친 영향이 구체적으로 밝혀져야 한다. 청주진위대는 1907년 8월 3일 해산되었다. 이후 청주 일원에서는 의병으로 참전한 진위대 원 들의 청주습격설이 끊이지 않았고, 실제로 의병 활동은 크게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한봉수의 투 쟁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청주진위대원의 의병 참여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는 전 무한 실정이다. 충북지역 의병의 올바른 조명을 위해 현장답사와 증언 청취를 통해 사례연구 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각지의 의병장과 의진에 대한 연구도 중요하다. ④ 1910년대 일제의 침략상과 민족운동사를 규명해야 한다. 충북의 경우 1910년 한봉수 의병장의 피체 이후 1919년 3·1운동이 발발할 때까지 1910년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