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page

520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896년 이강년부대의 전군장 홍대석 의병부대가 이강년의 요청으로 조령으로 이동 중 일본군과 교전을 벌인 곳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설운리 512 일대 충청북도 충주군 사을미면 장고개 산야 변형 - 수안보에 있는 일본군의 병참을 공략하려던 당초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제천으로 돌아온 이강년(李康秊 )은 전군장 홍대석( 洪大錫 )으로부터 조령을 막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전군이 안보를 공격할 것이니 그쪽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이강년은 조령을 막고 전군의 호응을 기다렸으나 끝내 소식이 없었다. 그는 한편 직접 본진에 보고하여 홍대석의 출진을 촉구하였다. 때마침 경병이 충주 쪽으로 접근한다는 정보가 있었기 에 홍대석은 서창의 수비에 급급하던 상황이었다. 대장의 독촉을 받은 홍대석의 전군은 서창으 로 지나던 광주산성장 김태원(金泰元 )이 이끄는 500~600여 명의 병력과 함께 남쪽으로 이동 하였다. 그러나 이동 도중에 장현( 獐峴, 장고개)에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포수 추성손(秋聖 孫 )·오문룡(吳文龍) 등 10명이 전사하는 큰 타격을 입고 서창으로 돌아갔다. 홍대석 부대가 일본군의 공격을 받은 장고개는 세성교차로에서 동쪽으로 약 300m 정도 가 면 식당 옆으로 ‘설운장고개길’이라는 도로명 표지판이 있다. 이 길이 장고개이며, 여기에서 남 쪽으로 ‘함박골길’을 따라 계속 가면 수안보면 수회리로 이어진다. 일제강점기 지형도에서 보면 지명은 없지만 당시에도 고갯길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지명총람』에서는 장고 개를 수회리에서 충주 쪽으로 질러가는 고개로 옛날에 이 고개를 넘어서 장을 보러 다녔다고 하여 오랜 기간 사용된 길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행 1:5,000 수치지형도에도 이 길을 장고개로 기록하였는데, 길 주변으로는 곳곳에 민가가 들어섰고, 곡부를 중심으로 경작지가 조성되어 일 부 변형되었다. 그리고 장고개 입구에는 북서-남동 방향으로 이천-문경선 철도공사가 진행 중이 다. 장고개 의병전투지 의병운동 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