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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896년 5월 23일부터 4일간 유인석의 호좌의진이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전투를 한 곳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 397-4 일대 / 엄정면 신만리 415-9 일대 충청북도 충주군 산척면 영덕리 독동 / 엄정면 신만리 독작골(족동) 산야 원형보존 - 1896년 이강년은 수안보에 있는 일본군의 병참을 공략한다는 당초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제천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온 이강년에게 홍대석( 洪大錫 )은 전군이 안보를 공격할 것이니 조령을 막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이강년은 조령을 막고 전군의 호응을 기다렸으나 끝내 소식이 없었으며, 그 때 홍대석은 경병(京兵 )이 충주 쪽으로 접근한다는 정보가 있었기에 서창의 수비 에 급급하던 상황이었다. 1896년 5월 23일 대장의 독촉을 받은 홍대석의 전군은 서창으로 지나던 광주산성장 김태원 (金泰元 )이 이끈 5~600여 명의 병력과 함께 남으로 이동하던 중 장고개( 獐峴)에서 일본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 시기 강령고개 쪽을 지키던 후군도 적과 부딪쳤다. 좌익 우필규( 禹弼圭) 를 강령고개로 보내어 파랑재( 波浪嶺)를 지키게 하였으며 광동(廣東 ) 쪽으로 접근한 적은 이범 직과 안성해(安成海)의 방어에 부딪혀 물러섰다. 그러나 안성해의 우군도 절반이나 퇴각하였다. 5월 24일 적은 곧장 방향을 돌려 강령고개 남쪽의 독곡( 獨谷 )으로 밀려왔고, 여기에서 후군의 채동집(蔡東集 )·홍귀봉(洪貴鳳)·임도봉(林道鳳 ) 등이 전사하였다. 2008년 조사에서는 독동 의병전투지 위치를 산척면 영덕리 독동( 篤洞 )에 위치한 독골고개로 비정하였다. 독동은 지금도 비교적 큰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지형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현행 1:5,000 지형도에서는 산척면 영덕리와 동량면 조동면를 연결하는 고개 에 독골고개(해발 173.7m)로 표시하였다. 하지만 2020년 7월에 실시한 1차 학술자문회의에서 는 독동 의병전투지의 위치를 엄정면 신만리 일대로 비정하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한국지명총 람』에서 보면 엄정면 신만리에는 ‘독작골’이라는 지명이 확인되며, 이곳이 곧 새터 북쪽에 위치 한 족동(族洞 )마을이라고 기록하였다. 일제강점기 지형도에서 보면 여기에서 동쪽으로 고갯길 이 있는데, 이곳을 넘어가면 산척면 송강리 상산마을로 갈 수 있다. 독골 의병전투지 의병운동 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