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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성터의병전투지 499 C h u n g j u 충 주 조사의견 참고문헌 1896년 유인석 부대가 충주성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크 며, 현재 현충시설로 지정되어 관련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활용가치가 높음에도 불 구하고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다양한 방식의 활용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2, 『한말의병자료집』4 『주한일본공사관기록』8, 「충주부근의 적정보고(1)」 국사편찬위원회, 2004, 『한국근대사자료집성』8 국권회복, ‘공제50호 충주부 폭도궤주의 건 보고’ 구완회, 1997, 『한말의 제천의병』, 집문당 구완회, 2016, 「을미의병기 호좌의진(湖左義陳)의 충주 지역 활동」, 『역사교육논총』58 성을 공격하였고 이에 의진은 근처 요해처를 지키던 군사를 성안으로 불러들여 일본군을 방 어 하였다. 3월 2일 가흥에서 출동한 일본군 3개 중대가 다시 충주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가하 였 다. 일본군은 성안으로 포를 난사하고 사다리로 등성을 기도하였다. 그리하여 의병과 일본군 간 에 충주성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다. 이틀간의 전투로 충주성은 모든 건물 이 불타고 민가 100여 호만이 남을 정도의 폐허로 변했다. 3월 5일 제천의병은 관군과 일본군 의 양면 공격으로 양식의 공급이 어려워지자 퇴각을 결정하였다. 이에 유인석은 청풍으로 진을 옮 겨야 했다. 현재 충주성은 훼철( 毁 撤)되어 문루와 성벽 등은 모두 소실된 상태이며, 관아공원에 청녕헌 ( 淸寧軒 )과 제금당(製錦堂) 등 옛 관아건물이 남아 있다. 이 관아공원 정문을 지나면 안내판 3 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중 하나에 ‘을미의병과 충주성 전투’라는 제목으로 관련 내용을 기록 하였고, 청녕헌 앞에 설치된 문화재안내판에는 유인석의 군대가 충주성을 점령하여 한때 위세 를 떨쳤던 곳이라고 기록하였다. 옛 충주읍성 성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