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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19년 3월 30일 청안면 주민들이 만세시위 한 곳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 221-5 일대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시장 변형 현충시설(청안 만세운동 유적비) 3월 중순부터 괴산 읍내와 소수면 등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청안면에서도 비밀리에 만 세시위가 계획되었다. 김수백( 金 壽伯 )·이태갑(李泰甲 )·신강면(辛康勉)·장성원(張聖源)·함재원(咸在源 )·박내명(朴 來 明 )등은 3월 30일 청안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30일 오후 3시 반경, 이 들은 장터에 모인 3,000여 군중(판결문과 조선소요사건일람표에 관한 건에는 2,000여 명으로 기록)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 운동을 시작하였다. 김명진( 金明鎭)·임수근(林水根 )·김춘경(金春 京)·연부산(延富山)·하성근(河聖根) 등도 수천 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주도 인사가 일경에 붙잡혀 청안경찰관주재소로 연행되자, 김수백 등은 군중들을 이끌고 주재소로 가서 구금자를 석방하라 요구하면서 격렬하게 항의하였다. 이에 일경들은 충주 수비대와 함께 총기를 발포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김수백, 장성원 등은 군중들을 이끌고 우편소를 습격하여 우편물과 사무실 및 집기를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일제 경찰은 충주에서 급파된 수비대와 함께 야만스런 무차별 발포를 감행하였다. 결국 일제의 발포로 홍봉운·노도원·이찬의·연병봉·우현우·연병룡 등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날 시위로 김수백·장성원·함재원은 각각 징역 3년, 이 태갑·박내명·신강면은 각각 징역 2년형, 김명진은 징역 10월 김춘경·하성근은 징역 8월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이태갑·장성원·신강면·함재훈·김수백에게 애족장을 추서하였 다. 그리고 김명진에게 건국포장, 김춘경과 하성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또한 일제의 발포로 순국한 홍봉운·노도원·이찬의·연병룡에게는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날 발생한 청안장터 만세시위는 충 북지역의 대표적인 시위 중 하나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지형도에서 보면 현재 청안면 읍내리의 청안면사무소 북쪽에 장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2008년도 조사에서 주민 장병덕의 증언을 통해 이 일대가 청안장터임을 확인하였다. 현재는 청안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3·1운동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