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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07년 7월 18일 의병 배창근 등이 일본군 의병 토벌대를 처단한 곳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462 일대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사방기 산야 변형 - 청주진위대 육군 하사출신인 배창근( 裵昌根)과 이기석(李基石 )은 1907년 8월경 군대가 해산 되자 의병에 합류하였다. 이들이 1907년 음력 7월 17일 청안군 원서면 구정탄 주막에서 의병 대원들과 있을 때, 마침 의병진압을 목적으로 출동하였다가 낙오된 육군 보병 이등병 도전청오 랑( 島田淸五郞)·율유길(栗留吉)이 이곳 주막 부근에서 야영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이에 배 창근과 이기석은 서쾌준( 徐快準)·노영섭(盧榮涉 )·설영천(薛永淺) 등과 함께 낙오된 일본군들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이튿날 이기석과 배창근 등은 전진하는 일본군을 뒤따라 진천군 초평면 사방기에 이르자 서쾌준은 일본군 1명을 유인하여 얼마 간 떨어진 촌락으로 데리고 가 사살하 고, 노영섭은 근처에 있던 주막 부근에서 나머지 일본군을 사살하였다. 배창근의 의병활동지는 『독립운동사자료집』 에 초평면 사방기라고 기록되었는데, 2008년 조 사에서 최상섭(영구리 어은 거주, 당시 72세)이 현재 영구물 일대라고 증언하여 확정하였다. 한 편 『한국지명총람』에는 초평면 영구리 영구몰 마을을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였다 하여 ‘사방터’ 라고 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곳이 사방기를 의미하는 곳으로 판단된다. 정부에서는 이들의 공적을 기려 배창근은 1993년, 이기석은 2013년 각각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초평면 영구리 의병활동지 의병운동 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