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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독립운동사개관 25 김병조의 저술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나, 중복되는 부분 등 오류가 있다. 27) 지금까지 3·1운동의 고전적 통계로 이용된 대표적인 것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로서, 여기에 기재된 충북 3·1운동 관련 통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충북지역3·1운동통계표(Ⅱ)> 28) 府郡名 會集回數 會集人數 死亡人數 被傷人數 被囚人數 槐山 6 6,000 淸州 7 5,000 20 沃川 7 4,700 40 92 48 永同 2 1,000 25 47 鎭川 3 900 堤川 7 2,900 16 25 41 陰城 6 2,000 6 10 忠州 6 3,250 12 36 48 忠淸北道 44 25,750 99 210 157 그런데 이 자료는 앞의 『한일관계사료집』을 이용한 것이기 때문에 그와 거의 비슷하다. 29) 다만, 여기에는 월일 대신 회집회수가 집계되어 있고, 회집인원과 피수인수는 동일하다. 사망자와 피 상자수가 증가된 것은 영동의 통계가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3·1운동 통계와 관련하여 주목하여야 할 것은 일제측 자료이다. 경무총감부와 헌병대사령부 가 합동 보고한 내용 중 충북지역 만세운동 관련 통계는 다음과 같다. <충북지역3·1운동통계표(Ⅲ)> 30) 道 別 參加群衆 出動 軍隊 發砲 箇所 (괄호는 헌병) 死傷 兵力 箇所 示威群衆 日帝 忠淸北道 23,730 90 11 9(5) 57 11 27 金秉祚, 1920, 『韓國獨立運動史略』上篇, 上海 宣民社, 여기에는 충북의 3월 중 시위 통계로서 괴산 6천, 청주 5천, 옥 천 4 천 7백, 영동, 1천, 음성 2천, 충주 3,250(74쪽), 4월 중 시위 통계로서 영동 1천, 진천 900, 제천 2,900 음성 2천, 충주 3,250(136쪽)이 기록되어 있으나, 4월 통계 중 진천을 제외하고 영동·제천·음성·충주는 3월 통계와 중복된 것이다. 28 朴殷植, 『韓國獨立運動之血史』, 34~36쪽(박은식, 2002, 『白巖朴殷植全集書』제2권, 동방미디어, 174~176쪽). 29 『韓日關係史料集』에 집계된 3·1운동 관련 통계보다 『韓國獨立運動之血史』의 통계가 더욱 증대되었다. 그 까닭은 예컨대 진주 의 3월 20일의 시위자 수가 『韓日關係史料集』에는 8,000명이나 『韓國獨立運動之血史』에는 28,000명으로 기록되는 등 자 료의 이용 과정에서 천, 또는 만 단위의 숫자가 오류로 추가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박걸순, 1999, 「大韓民國臨時政府의 역 사서 편찬」, 『大韓民國臨時政府樹立80周年記念論文集(下)』, 국가보훈처 참조). 30 朝鮮總督府, 1919. 5. 10, 「騷擾事件報告臨時報第十二」(金正明編, 『朝鮮獨立運動』第Ⅰ卷, 754쪽의 「騷擾事件道別表(3. 1 ~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