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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독립운동 사적지 기초조사 보고서 24 적 상황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2) 다 음에 규명하 여야 할 것은 충 북지역 만세운 동의 개괄적 통계이다. 충 북지역의 만세운 동 을 알려주는 몇 가지 통계자료가 있다. 3·1운동 관련 통계로서 가장 먼저 정리된 것은 1919년 9 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제연맹에 제출하기 위해 임시사료편찬회(총재, 안창호)를 조직하여 편 찬 한 『韓日關係史料集』의 제4부에 첨부된 「독립운동일람표」이다. 23) 여기에 수록된 충북지역 3·1 운동 관련 통계를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충북지역 3·1운동 통계표(Ⅰ)> 24) 郡名 月日 會集數 死亡數 被傷數 被囚數 主謀團體 槐山 3. 20 6,000 淸州 3. 23 5,000 20 天道敎 沃川 3. 27 4,700 40 92 48 永同 3. 30 1,000 鎭川 4. 2 900 堤川 2,900 16 25 41 陰城 2,000 6 10 忠州 3,250 12 36 48 忠淸北道 25,750 74 163 157 이 자료는 지금까지 거의 활용하지 않은 것이나, 3·1운동 직후 정리된 최초의 기록이자 대한민 국임시정부가 정리하여 편찬한 공식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특히 이 자료는 1920년 상해에서 편찬된 金秉祚 의 『韓國獨立運動史略』 上篇 과 박은식의 『韓國獨立 運動之血史』의 저본이 되었다는 점에서 사학사적 의의와 함께 선행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 는 것이다. 다만, 이 표에 정리된 날짜 등에 오류가 있고, 그나마 제천·음성·충주는 월일이 누락 되는 등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나, 임시정부가 밝힌 것처럼 전체적인 조사가 불가능하여 일부 지역만 조사하여 정리하였기 때문에 많이 遺漏 되었던 것이다. 25) 보은과 단양이 통계에서 누락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26) 이와 함께 金 秉祚 의 『한국독립운동사략』 상편과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통계도 중요하다. 전자는 『한일관계사료집』의 독립운동 부분 책임자로서 자료의 수집과 정리를 담당한 22 그러나 종교적 영향은 미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3·1운동 입감자 도별 종교인 통계에 의하면 267명의 종교인 입 감자 중 충북은 함북과 함께 1명도 없었다(近藤劒一, 1964, 『万歲騷擾事件(1)』, 東京:友邦協會, 223~227쪽). 23 박걸순, 1999, 「大韓民國臨時政府의 역사서 편찬」, 『大韓民國臨時政府樹立80周年記念論文集(下)』, 국가보훈처. 24 국사편찬위원회, 2005,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7, 731~732쪽. 25 국사편찬위원회, 2005,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7, 720쪽의 「獨立運動一覽表의 注意」. 26 박걸순, 1999, 「大韓民國臨時政府의 역사서 편찬」, 『大韓民國臨時政府樹立80周年記念論文集(下)』, 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