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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214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의병장 한봉수가 태어난 곳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세교리 177-2 충청북도 청주군 북일면 세교리 197 가옥 멸실 현충시설(한봉수 생가 터) 한봉 수( 韓鳳洙, 1883.4.18~1972.12.25)는 청원군 내수읍 세교리 197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07년 의병투쟁을 시작하여 1910년 5월 일제에 체포될 때까지 충청북도 일원은 물론 경상·강원지역 등 광범한 지역을 무대로 다양하고 격렬한 투쟁을 벌인 중부지방의 후기의병장 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한봉수 부대의 특징은 평민으로 구성된 소규모 부대를 이끌고 오랜 기간에 걸쳐 민중의 적극 적인 호응을 받으며 활동한 점이다. 특히 유격전에 능하여 번개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 다. 그는 일본인 자산가와 친일파 처단, 밀정과 변절자의 응징, 일본군과의 직접 교전, 군자금 모 금, 우편행랑 습격 등 활발한 의병활동을 하였다. 1910년 체포된 한봉수는 사형 선고를 받았으 나 15년 유형으로 감형되었다가, 합방대사령( 合邦大赦令)으로 면소되어 출옥하였다. 이후 1919년 거족적인 독립운동인 3·1운동이 발발하자 4월 1일 고향인 세교리 장터에서 만 세시위를 주도하였고, 이튿날에도 내수공립보통학교 학생들과 장꾼들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 도하다 체포되어 다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려 1963년 독립장을 추서 하였다. 그는 독립운동사의 양대 산맥인 의병과 3·1운동의 가교적 인물로 평가된다. 한봉수 생가는 1970년대까지 남아 있었으나 현재는 철거되고 새로 건물이 들어선 상태이다. 이 건물에는 얼마 전까지 송어회집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한봉수 생가 터 의병운동 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