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page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142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19년 3월 30일 미원면민이 만세시위를 전개한 곳 충청북도 청주시 미원면 미원리 493-5 일대 충청북도 청주군 미원면 미원리 시장 시장 변형 현충시설(쌀안장터 만세운동 기념비) 3월 30일 미원장터 3·1운동 만세시위는 청주군내 만세시위 중 가장 괄목할만한 사건이다. 이 만세운동은 신경구( 申敬求)·이수란(李水蘭 )·이용실(李容實) 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들 은 장날을 이용하여 시위할 것을 결의하고,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제작하는 한편 동지를 규 합했다. 신경구는 오후 2시경 약 20명의 군중에게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라고 권유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200보 정도 떨어진 미원헌병주재소의 헌병들을 출동하여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저항했다. 이에 헌병들은 신경구를 체포하여 주 재소에 유치시켰다. 그러자 약 1,000명의 군중들이 집결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구금자 석방 을 요구하고 소장을 죽이겠다고 항변하고 주재소를 공격하여 파괴했다. 이에 청주경찰수비대의 일부 병력까지 동원하여 발포함으로써 현장에서 1명이 순국하고, 다수의 부상자와 피해자가 발 생하였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체포된 이수란 징역 1년 6개월, 신경구·이용실은 징역 1년에 처 해졌다. 이후 정부에서는 이들의 공을 기려 신경구·이용실·이수란에게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미원장터의 위치는 2008년 조사에서 이복례(미원2리 거주, 당시 80세)가 현재의 위치와 차이 가 없다고 증언하여 확정하였다. 일제강점기 지형도에서 보면 현재 미원터미널을 기준으로 삼거 리를 이루고 있으며 여기에서 북동쪽으로 길을 따라 길게 마을이 형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현재 도로나 마을 구조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미원장터 일대는 도로가 개설되고 많은 건물이 들어서면서 일부 변형된 상태이다. 미원삼거리 서쪽에는 미원장 터 3·1운동 만세시위를 기리기 위해 만세운동기념비가 건립되었다. 미원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3·1운동 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