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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석 이석영(潁石 石榮 1855~1934) 1855년 서울 저동에서 탄생하였고 1885년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李裕元)에게 입양되어 남양주시 화도읍 가곡리에 거주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유산으로 물려받은 화도읍 가곡리 토지 등 전 재산을 팔아 만든 40만원(2020년 기준 약 2조원)을 가지고 6형제 일가족 60여명과 함께 만주 삼원포로 망명하였다. 무장항일운동의 산실이자 광복군의 초석이 된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군 양성하여 3천여명의 장교를 배출하였으며, 훗날 이들이 청산리전투와 봉오동 전투 등에 참여하여 항일 독립투쟁의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이석영 선생은 1920년 이후 상해.북경을 떠돌다가 1934년 상해 빈민가에서 생을 마쳤다. 그 공적을 인정받아 1991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