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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민씨 ζ벼|식 l ”” 민비 시해에 동원된 한성신문사 사원 위하여 육군 중장 출신의 강경파 미우라를 조선 공사로 파견하여 민왕후를 살 해해 제거히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상황이 일단락되자 오전 6시 미우리는 입궐하여 당일로 신내각을 조각하게 하고, 왕후가궁궐을 탈출한것처럼 꾸며, 고종을 압박하여 왕후를폐한디는조 칙을 내리게 하였다. 그러고서 일본군민의 가담을부인하는공문을보내게 하 고이를확보해 두었다. 그러나사건의 진상은감출수없었다. 서울주재 서양 외교관들이 일본의 잔혹한 행위를 폭로했다. 주한영국영사 힐리어Walter C. Hillier는 1895년 10월 11일 이 사건을 아래와 같이 본국에 보고했다. 왕후는똘아래로뛰쳐나갔지만곧붙잡혀 넘어뜨려졌다 그뒤 흉도들 은 왕후의 가슴을 짓밟으며 일본도를 휘둘러 거듭 내려 쳤다. 실수가 없도 록확실히해치우기위해그들은왕후와용모가비슷한몇몇궁녀들까지함 께 실F해하였다. 二l 때 왕후의 의녀女待뽑가(가까스로용기를내어) 앞으로 나아가 손수건으보왕후의 얼굴을가려 주었다 한둘의 시신이 숲에서 불 태워 지고‘ 나머지는궁궐밖으로옮겨가처리되었다‘ - r주한영국영사띄 보고문」 제1편 | 국제정세의 변화와 조선의 위기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