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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獨..1'z:iill파)J:J.!.資料링(~JJ家돼뼈 j앓) 14캉, 924r 떼 송학선宋學光 훈격 독립장(1962) (이명 : ~’學善, 末仁秀) 1897. 2. 19. ∼ 1927. 5. 19. 송학선은 서울 서대문 천연동에서 출생하여 자랐으나, 1922년 25세 때부터 고양군 연희면 아현북리로 이사하여 살았다. 그는 1897년 2월 19일 아버지 송 성근宋뿔根과 어머니 김씨 사이의 맏아들로 출생하였다. 송학선은 정결하고 신중하며, 정직한 성품을 타고 나 송상도의 『기려수필』 에는 ·‘어려서부터 / 덩품이 과묵하여 일생을 두고 남과 언쟁을하지 않았고, 밖에 출입하는 것올 좋아하지 않아 항상 청결함을 좋아하였다.‘’고 적고 있다 통생 인 ‘삼학선‘도 “청결한 것을 몹시 좋아하는 결벽증이 있었던 모양으로 늘 몸을 깨끗이 7p규었으며 하루에도 발을 두 세 번씩 씻었다.”고 한다 깨끗하고 올 바 른 성격을 가진 송학선의 눈에 일제의 그릇됨을 보고 그의 시대양심이 표출된 것이금호문의거였던것으로보인다. 13세(1909) 때 서대문공립보통학교 1학년에 다니던 중, 아버지의 사업이 파 산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전라도로 연근장사로 그와 아우도 집을 떠나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다. 이 때문에 학업도그만두어야했다- 그는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갖은 고생을 하였다. 1913년 17세 때 장사 갔던 아버지가 돌아와 만리동에 있는조선인쇄소朝蘇印채lj所에 취직하면서 가족이 다시 .5:!..여 살게 되었 다. 1916년 20살때그는서울남대문통에 있는일본인토다戶田春藏方가경영하 는 정미소 발동기 판매 회사에 고용원으로 취직하였다 여기서 장사 심부름도 하고 발동기 운전과 수선기술을 배웠다. 동생 삼학선.도 같은 회사에 다녔다 아버지와 이들들이 직 업을 가지면서 살림이 조금씩 나아 져 1922년 2월 고양군 북아 현동에 집도장만했다. 그러나그해에 다니던 회사를그만두게 되었다. 판 결문둥에서는급성 각기병에 걸려 일을할수없어 회사에서 해고되었다고한 부록 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