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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1931년 말부터 1932년 초중반에 이르는 시기 조선놓민총동맹과 조선노통총통맹 산하의 농조와 노조는 대부분 해체되었다. 해체를 면한 농조 와노조도간신히 명백만유지하다가조선농민총동맹과조선노동i총동맹이 해 체되는 1935년 6월경 자연 해산되었다. 일제는 민중운동을- 탄압하고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유지층의 친일화 에도 많은노력을 기옵였다.기 1932년 말부터 관제 농민운동인 농홉진흥운동이 본격화되었으며, 193,1년의 지방자치선거에서 23,561명의 한국인이 읍 · 면협 의회와 부회府會에 진출해 식민지 사회의 유지층을 이루며 일제의 대리지배자 로 나서서 농민과 노동자를 지배하고 수탈하였다. 지방유지들은총특부권력의조직적인지원에힘입어끄나불또직(특히자위 단)을 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합법 농조를 억압, 파괴했다. 농촌진흥운동과 통시에 전국 각 마을 단위로조직된 농촌진흥회, 향약, 관제청년단, 소방단, 자 위단,자경단동은모두총독부와지역지주들의 끄니불조직’들이었다. 1933 년 11월 당시 진흥회, 향약퉁각종의 관제 농민조직은 대략3만개 정도였다. 농 촌진흥운동의 중견척 지도자(민간측담당자)를 양성한다는 이른바 ‘중견인물 양 성계획’은 ‘끄나불 양성계획’의 다름 아니었다.s) 한편, 총독부는 일찍부터 요주의 · 요시찰인물의 신상카드를겪찰서에 비치 하고 이들의 활동을 C일일이 감시하였다. 1938년의 경우 7,790명이 감시 대상이 었다. 1930년대 초반부터 지주 • 상공업자등이른바한국인 .유지’들에 의한민족 개량주의운통이 전개되었다. 특히 이들은 당면이익 획득’이라는 구호에서 보 여주듯이민족문제의근본적인해결보다‘정치적자치’와‘경제적인구제’를청 원하는운동’을벌였다. 이를위하여각종여론매체를총동원하고,한국인싱공 7) 1930년대 초반에 집중적으로실시된 일제의 민족개량회정책에 대해서는지수걸의 「1930년 대 초반기0930-1933)사회주의자들의 민족개량주의운동비판」, 『80년대 인문사회과학의 현 단계와 전망』, 역사비 명사, 1988; 「1930년대 전반기 조선인 대지주층의 정치적 동향」, 『歷史 學報』 122호, 1989; 「1930년대 전반기 조선인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의 .민족경제건설전략‘ -조선공업화와 엔블럭재편정책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國史6흩兪號』 51집, 1994, 참조 8) 지수걸, r1932-1935년간의 조선농촌진홍운동」, 『韓國史E升究』, 1984 참조 제5편 | 일제 침략전쟁의 확대와 항일독립운동 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