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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1932년에 놈림국이 작성한 기밀문서인 『농촌궁민의 실정과 춘궁상태에 있는 농민호수』 애 의하면 1930년 당시 전국 자작농호의 평균 17.6%, 자소작농 호의 평균 36. 5%, 소작농호의 평균 66. 8%가 봄에 식량이 떨어져 굶주리는 춘 궁상태에 있었다고한다. 2) 노동자의 경우도 1929년한국인 성년의 일급日給은남지- 1원, 여자 59전이었 으나 1931년에는 각각 %전, 37전으로 하릭하였다. 조선총독부 『조사윌보調환 月報』 에 의하면 1931년 서울지역의 실업율은 22. 2%에 달했다. 상당수의 노동 자나농민들은 실업 혹은 반실업 상태에 있거나농토를 떠나모시로 또는 일본 으로 건너가 막노동자가 되었다3) 이리하여 1945년 ‘해방’될 ;즈음 외국에 거주 하던 한국인의 수는 무려 4백 여 만 명(만주지방 160만, 중국관내 10만, 일본 210만, 소연방 20만, 미주지역 3만)에 달했다_4) 생존권투쟁의격화 1930년대 초반 공황의 여파로 민중의 경제생활이 열악해지자 소작쟁의와 노 동쟁의, 부당수세 반대운동(미림,동진, 평안수리조합) 국유지 부당불하반대투쟁 (완도), 호세 연납 및 채권문서 소작투쟁(홍원), 산림조합 반대투쟁(단천), 화전 정리 반대투쟁(겁산), 도로부역 반대투쟁(삼척), 어업권 탈취 반대투쟁(제주)과 같은 생존권 옹호투쟁이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이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소작쟁의와노동쟁의였다. 소작쟁의와노동쟁의는 1930년을전후한시기에 폭 발적인증가추세를보였다. 1929년부터 1931년경까지 소작쟁의와노동쟁의는 앞시기에 비해 대략 2배 내지 4배 가량증가하였다. 농민노동자의 생존권투쟁은 양적으로만증가한것이 아니바질적인 발전도 대단했다. 즉쟁의는 점차폭동적 성격을띄어갔으며 또쟁의의 전개과정에서 2) 강만길, r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 창작사, 1987, 23-114쪽, 지수걸, 『일제하농민조합운 동 연구』 , 역사비평사, 1993,38-43쪽, 참조 3) 강만길, 위의 책, 335-391쪽; 在 D 뼈왜!f/\ 勞피Jr4쥬의 생활상태와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않·植, 『{E 日때빡Aillftl이史(8 . 15解껴〔때)』, 파京 三-팍房, 1979 참조 4) 金댐. 『웰댐O)J\cn經濟』, 岩빠팝店‘ 1965, 25∼39쪽 참조 382 고양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