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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조선 해안에는이양선들이 조선주변을 탐 사하며등장하였다. 〈주요 이앙선 출렬 기록〉 1787‘ 05 프랑스 페루즈 탐사대, 제주도와 울릉도 탐사 1791 08 영국 해군장교 제일스 콜네트으| 아르고노트호, 제주도 주번 해억 담사 1797. 08∼09 영국 군함 프로비던스호, 정진 • 영흥만 · 용당포(동래) 등 동해안 탐사 1816. 09 영국 군함 알세스트호 • 리라호, 황해도 • 충청도 • 전라도 앞바다 측량 1832.06-07 영곽동인도회사상선 애머스트호, 황해 · 출정 해안출현, 똥상요구, 성경전달 1845.06-08 영국 군함 사마랑호, 제주도 • 거문도 탐사 거문도, 해밀턴 항이라 명명 1848. 조선 근해에 많은 이앙선이 나타남 1849. 여름프랑스포경선리앙쿠르트호,통해서고래잡이중독도발견, .리앙쿠르섬‘으로 명명 서구열강의배들은근해를지나가며조선에통상을요구하였으나거대한시 장과 인구가 많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그 압박의 강도가 펴 1 높은 것은 아니 었다. 그런 가운데 쇄국정책을 강화해 오던 조선은 청국이 천주교를 공인했다 는 소식에 놀랐다. 서구세력이 조선의 전통적 사장을 무시하고 이단적 서학에 대한 문호를 열포록 강압할 것이라는 경계심과 위기의식에 사로잡혔다. 천주 교를가리키는서학 • 서교는사학쩌헬 · 이단이며,서양은금수*戰(짐승)로 인 식하여 여러 차례 ‘시옥%鳳‘이라부른 천주교 박해가 있었는데, 1800년 정조가 사망하고 노론 벽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본격화되었다. 1801년 신유사옥, 1839 년기해사옥등이 일어나천주교인들을처형했다. 조선은 나라문을닫 아잠 그 는 쇄국과 서양세력을 배척하는 양이洋몇의 틀 속에 갇히고 말았다. Ot시야의위기 19세기에 들어서자서구 선진지본주의 국기들은 탐욕스런 모습으로 동아시 36 고양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