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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데 성공했다. 그는 2층비서과출납여비계出納旅싼係설을총독실로오 인하고폭탄한개를던지고곧회계과장실에 또한개를던졌다. 그러나이깝게 도비서과에 던진 것은불발이 되었고, 회계 과장실에 던진 것은폭발은 했으나 유리창몇 장과 마 루 바닥이 파손되었고사람이 자리에 없었던 까닭에 인명 살 상은없었다. 김익상은폭탄응을 터지고소란이 일어나면서,사람들이 모여등를자유창한 일본 말로 --아 부나이, 〈까부나이!”즉위험하다위험해 ---라고외치면서사림들사이 를헤치고유유히자취를감추었다. 그는 남산의 총독부를 빠져나와 일부러 인근 일본 요정에 될러 식사를 하고 다시철공짧工으로옷을갈아입은후, 남대문역에서경의선을따고평양에가서 며칠간 쉬다가 압록강을 건너 베이징으로 돌아 갔다. 김익상은총독 부폭탄투하거사 결과가생각같지 않아분하게 생각하고, 다 른 기회를 기다렸다. 1922년 2월 28일 오후 3시 반상하이 황포.탄부두에서, 필 리핀에서 출발하여 상하이로 도착하는 일본의 전 육군대신| 觸大많 다나카田中 찮-를저격하였다 미리계획한대로오성륜이먼저권총을발사했으나명중시 키지 못하였다. 곧바 로 이어 김익상이 폭탄을 던지고 권총을 연사했으나 이번 에도 폭탄은 불발되었 고 탄환은 다나카를 맞히지 못하고 영국인 톰슨 부인이 맞고즉사했다. 그를 체포하그l 자 달려드는중국 경찰관에게 위협 발사하여 경 상을 입히고구강‘로九江路에서 사천로四川路로빠져 급히 달 아나는데, 피살된 영 국 여인의 남편인 톰슨이 길을 막고 발포했다 이에 김익상도웅사하여 톰슨을 부상시키고 영국 조계경찰과 중국 순경에서 붙들려 상해 항무국港秘局 경찰서 애 송치되어 취조를 받았다 그후 일본영사관 경찰에 인도 인도되었다가 일본 의 나가사키長뼈로 압송됐다. 한편 김익상과 함께 체포되었던동지 오성륜은상하이 영사판 경찰서 유치장 별실에 갇혀 있다가 창문을 부수고 황포탄강으로 뛰어들어 틸주했다. 김익상은 나가사키에 도착하여 1922년 5월 5일 나가사키 형무소 에 수감되었 다. 5월 19일 나가사키 지방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이 언도되었으나, 검사의 공소 앉訴를 받은 나가사키공소원良뼈控訴l兄에서는그에게 사형을 언도했다. 김익상 372 고양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