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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상해로부터 국내로 밀반입하여 경남 밀양에 보관하고 고문인 황상규iii尙奎 와 단원 11명이 국내로 잠입해서 서울 • 부산 • 마산 • 밀양에 분산 배치되어 거사준비작업을 하썼다. 그러던 중 일제의 물생틈 없는정보망을- 이기지 못하 고폭탄은닉 사실이 일경에 탐지되는바람에 관련자 20명이 피체되었고 이 최 초의 거사 계획은 중도 죄절되고 말았다. 의열단은 싱가폴에서 푸역회사 직원 으로 일하고 있던 박재혁을 일본 나가사키를 경유해 부산으로 잠입시켰다. 박 재혁은9월 14일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경철서장하시모토碼本秀平를죽이 고 경찰서 건물을 대파하였다. 석달후인 12월 27일에는밀양의 노동자최수봉崔쉽Jiil이 폭탄푸개를밀양경 찰서에 던져 청사 일부를 파괴하였다. 1921년 9월에는 고양출신 김익상金益相 이 조선총독부 청사 딴에 들어가폭탄을 던지고는유유히 빠져나와국내를탈출, 베이징으로 귀환하였다. 1922년 3월 28일 의열단은 육군대장 다니카田中-짧-가 김익상의 의거지 상하이 황포탄 제4편 I 3 · 1운동 이후의 국내외 독립운동 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