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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산시켰다. 신간회 경서지회에서 그 회 회원과 연강 사회운동자를 망팍하여 신년간 친척사회를주최한다함은기보한바와같거니와예정과같이 지난 12일 밤 부터 구룡산똥산각에서 지회장서세충徐世忠씨 개회사로개펙하게 되었었 는데. 당일 출석회원은 80여명이나되어 실로오랫동안에 이래한모임이 없 던 연강에 있어서 매우 성황을 이루었으나, 임석 경관은 회원이 이렇게 많 은 것은 신간렉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이유로 불만을 가지고 또는 감령을 써 붙인 것도 회원 이외 사람에게 선전체려는 생각과 또는이렇게 다수한사람을신청받는것은영리적 행동이라눈등부당무리 한조건을가지고자주말하던 경관은때마침 홍백 양편이 승부문제로조긍 현화가있었으나‘ 즉시 진정되었음에도불구하고이것을유일한조건으로 해산을 명하애 일반은불평히 만만한중에 정복 경관수명이 달려와서 회원 전부를장외로 축출하였었는데, 다 시간두측의 교섭으로윷놀이만중지하 고 만찬과 담회도 익일 오전 1시에 폐회하였다더랴.26) 1920년대 일제가문화정치를표방한시대였으나단체활동씨 결코자유롭지 못했음을보여주는장면이라할것이다. 특히 신간회와같이 전국적인 민족주 의와사회주의의 협동조직으로서 상당한조직적 힘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제의 감시가 더욱 심했던 것이다 26) 『조선일보』, 1929. 1 14 고양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