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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 씨앗을뿌리게 되었다. | 고양의 노동푼동 | 일제강점기 고양군 지역에는 방직공업과 제지업 • 고 무공업 퉁이 비교적 발달되었다. 그리하여 경기도에서도 노동·.7-}들이 밀집된 곳으로꼽혔으며, 인천 • 수원 • 시흥 • 개성 • 부천 등지와함께 한국에서 자본 주의적 진전이 바교적 빨랐던 곳이다. 1920 . 1930년대 고양군에는 크고작은 공장들이 있었으며, 1932년 100인 이 상고용한공장이 2개 있었다. 즉숭인변 신셜리에 소재한서울고무공사는고무 신 제조 노동자 120명을 고용하고 있었고, 신설리 종연방적주식회사 경성제사 공장에는 제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534명을 고용하고 있었따. 이들 공장 노동까띔을 기반으로 하여 1925년 11월 22일 고양군에서 노동청 년회가 발족되었고, 1920 . 1930년대에 집중적으로 노동운동이 일어났다 .19) 1925년 7월 31일 한지면 동빙고리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동맹파 업을단행하였다. 경찰은주동자3명을구속하고나머지 노동차들을강제 해산 시켰다. 1926년4월 10일에는광희문밖, 한지변 신당리에 있는지전직물공장에서 수 컨짜는노동자들이 하오 3시부터 파업에 돌입하였다. 성수기에도불구하고한 타에 30전씩 임금을 주던 것을 2전씩 감히-여 28전씩을 지급하펴는 임금인하 벙­ 침에 반발하여 파업을 단행한 것이었다. 1926년7월 7일에는한지면왕십리소재이케다직물공장에서임금인히를반대 하여 동맹파업이 일어났다 종래 한타에 30전씩 받아오던공임工첩을무조건 6전 을감하여 24전씩 받으라하자무리한임금인하에 반대하여 동맹파업을 단행하였 다. 이 때의 동맹파업은 임금인하뿐만아니라, 평소음료수의 편의조차제공하지 않았던 고용주측띄 가혹한노동조건에 대한불만이 쌓여 폭발한 것이었다. 당시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는 30명이었으나, 주변의 다른 직물노동자에게 큰 영호t을 미쳤다. 이 동맹파업은 직공조합의 후원과 통일 부문노동자들의 동 19) 경기도,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사」 '1995 ‘ 654-700쪽 참조 35。 고양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