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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간되었다. 미주 하와이에서 『신조신문』(1904.3)을 시초로 그 후 『한인시 사 』 • 『한인합성신보』 · 『신한국보』, 샌프란시스코 • 로스앤젤레스에서 『공 립신보』(1905. 11. 20) . 『신한민보』 퉁이 발행되었다. 1936년 8월 9일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 마리톤경기에 우승했을 때 『조선중앙일보 』와 l「동아 일보』가 손기정의 시상식 사진에서 가츄에 부착된 일 장기를 말소하고 보도했다. 총독부는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에 대해 무기정간처분을 내렸다. 1940년에 들어와 총독부는조선 • 동아에 대해 자진폐간을강요하고 신분용 지 배급을제한하는퉁압박을가했다. 결국총독부의 압박에 못이겨 1940년 8 월 10일두신문은폐간되었다. 한말 이래 언론은 개화와 근대화 자주독립을 위해 국민의 자발적인 함여를 이끌어 내고 결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민족교육운동 1905년 을사늑약으로주권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과 광무황제강제퇴위, 군대해산둥으로국권이심각하게위협에처하자전국에서 지방관, 지역유지,종교단체 들이 주도한사립학교설립붐이 일었다. 민간차 원의 교육운동 추깐기구로서 기호홍학회를 중심으로 서우학회 • 한북홍학 회 · 호남학회 • 교낚교육회 • 관동학회 동의 학회들이 조직되어 학교설립, 기 관지 발간, 강습회 • 강연회 동을 통하여 지식보급과 민족의 자삭을 고양시켰 다. 특히 서북지방에서 교육열풍이 강했다. 대표적인 사립학교화 평북 선천의 신성학교, 정주의 오산학교, 평양숭실학교와 대성학교, 안악 양산학교楊山學校 가 있었다 특히 안악에서는 1906년에 최광옥崔光玉 둥이 중심이 되어 면학회빼 學會와 해서교육총회를 결성하고 서북지방 일대 사회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기호흥학펙가서울에 세운 기호학교의 후신중앙학교가 재정난에 빠 지자 1915년 김성수가 인수하였고, 후에 보성전문학교도 인수하여 해방 후 고 려대학교로발전했따. 지식인과작가들은민족주체성을살리는교과서와위인전 • 역사서둥을저 제4현 I 3 · 1운똥 이후의 국내외 독립운 통 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