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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찌鉉의 집에서 만나 암살단에 가입하였다. 이어 김상욱으로부터 권총 1정과 탄 흰-3발을 받고 수일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파 모금원 엄준댔俊을 방문하였다. 유득신은 엄준과같이 그해 10월 10일오후 1시경 고양군한지변의 경기도평의 원 임원상샤JJ;i:相 집에 잠입하여 군자금 2천원을 징수헤 김상옥에게 중국 피신 자금으로주었다. 그후다시 10월 30일고양군 이만 웅종B免R뺑 집에 들어가 1천원 의 군자금을 낼 것을 요구하여 206원 50전을 징수해 임시정부 특파원 홍준洪俊 에게 주었다 . 그는 여러 차례 군자금모집 활동을한끝에 일제꾀 검문망에 걸려 1921년 1월 16일 엄준이 붙잡히고 그도 이튿날오후 1시 반경 남대문 세브란스 맹원내김경배않敬t쯤집에서 붙잡혀소지했던권총 1정,탄환 1텔,폭탄 1개도압 수딩 L하였다, 유득신은 징역 1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내) 1919년 9월 전파남도 강진에서 평북 철산 출신의 조치훈itl'.l:flc뼈ry(25세)이 일제 경찰의 불심검문께 걸려 취조를받게 되었다. 그의 소지품속에서 세로 2치, 가 로 1치 5푼(약6×4.5cm)의 백견지 f'=I쩌地에 태극기를교차하고‘조선독립의성회 때폐뼈立꿇成會.라고먹으로쓰고그밑에조선독립의성회증명인주인米印을 누 는것 7매와경성 본회라고 쓴밑에 앞의 것과같은주인朱印을누른친약장鏡約 μ 2매, 상 해 임시정부 재무총장 최재형센在亨이 발급한 애국담집합위원증愛國 t짜合委뭉끓 1매가 발견되었다. 이 사건을조사한일제측자 료를 보면, 조선독립의성회 회장은 경기도고양 군용강면 서고리|펌라밍에 사는전직 학교교사 김초 ι규金昌圭이떠 그는 임시정부 에서 파견된 자라고 한다. 본부는용강면 서고리에 있고, 충청도인 나기홍羅基 弘은 제주도로파견되고,조치훈은전라남도방면에파견되어강진군기독교회 조수 최복상밟福三과 함께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독립자금 모금활동을 하고 “만세시위 참여지로서 방면된지들을 권유하고있다.”고보고하였다. 이로보 떤 고양군 용강변에 본부를둔조선독립의성회가 전국의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독립자금 모금 활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 4) 독립운 동사편찬 위원회, r독립운동사자료집j 9 임시정부사자료집, 559--561쪽; 국가보훈처, 「독립운동가공훈록」 5) 위의 책. 314-315쪽‘ 32 1쪽 318 고양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