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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공보 김상옥의사가 발행 배포한지하신문 시무실에서 동사판을사용하여 각기 약 6백 매를 인쇄하여 모두 이종린에게 주었다. 이종린은 임준식에게 이를 전달하였고 임준식은 당일 이를 종로통 북 측의 민가에 배포했다 장종건은 그 후 이종린이 체포되자 『조선독립신문』의 발간을 계속하기 위하여 전수학교 학생 최치환 · 임승옥과 최기성崔파켈, 강태 두美泰斗 둥과협의한후3월 13일경 광호댄통 85번지유병륜벙-에서 『조선독립 신문』 제5호를 발긴하고 이를 서울시대에 널리 배포했다. 또한 3월 15일경 유 병륜방에서 장종건 • 최치환 • 임승옥 • 최기성 • 강태두와함께 제6호 약9백 매를 인쇄하여 이를 경성부내에 반포하였다 3월 16일 견지동; 이종렬 방에서 제7호는 수백 매훨 인쇄 배포하였다, 그 후 일제의 류느적을 피하기 위하여 장종건 · 최치환은 고양군 용강면 공덕 리에 거주하는남정훈南政勳과의논하여 3월 22일에서 3월 24일까지 공덕리 남 정훈 집으로 이통해 퉁사판으로 「조선독립신문」 제8호 약600매, 제9호 약2천 매를 인쇄해 최기성이 서울 시내에 배포했다. 50) 1919년 5월 23웰 조선민족대통단사건이 발각되어 인쇄 준비 중이던 여러 문 254 고양독립운동사